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하였을 때 예방·치료제 특허의 강제실시 문제가 크게 주목을 받았다. 강제실시란 특허권자의 동의 없이 일정 요건 아래 특허 의약품을 강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은 그 논의가 한풀 꺾인 듯하지만, 또 다른 감염병의 대유행을 대비하려면 특허권 강제실시는 앞으로도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이다.
과거에도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에이즈 치료제 특허의 강제실시 문제가 다각적으로 논의되었다. 과거와 다른 점은 코로나 예방·치료제 특허의 강제실시는 선진국을 포함한 전 지구적 문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감염병의 대유행은 국가 비상사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특허권 강제실시에 대해 새삼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특허권 강제실시는 트립스(TRIPs) 협정 제31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우리 특허법도 강제실시 관련 조항을 두고 있다(제106조의2, 제107조). 트립스 협정 제31조는 정부사용(Government Use)을 위한 강제실시(특허법 제106조의2)와 재정(裁定)에 의한 강제실시(특허법 제107조)를 모두 포괄한다. 앞의 강제실시권은 정부가 직접 특허발명을 실시하거나 정부 외의 자에게 실시하게 하는 것으로 특허청장의 행정처분에 의해 발생한다. 뒤의 강제실시권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제3자가 특허청장에게 재정(裁定)청구를 하면 재정에 의해 발생한다.
팬데믹과 같은 공중위생상의 국가 긴급사태의 경우에는 ‘정부사용을 위한 강제실시’가 훨씬 대처 효과가 크다. 2020년 3월 팬데믹 선언 직후 독일, 프랑스, 캐나다 등은 기존 특허법을 정비하였다. 모두 ‘정부사용을 위한 강제실시’와 관련된 것이었다.
독일은 특허법 제13조(정부사용)를 개정하여 연방보건부 또는 그로부터 위탁받은 하위기관이 특정 특허에 대해 사용명령을 발동함으로써 해당 특허권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였다. 프랑스는 긴급사태법을 발동하여 지재법이 아닌 공중위생법에 기해 국무총리가 유연하고 신속하게 정부사용을 위한 강제실시를 허락할 수 있도록 하였다. 캐나다는 특허법 제19.4조를 신설하여 비록 한시적이지만 보건부장관의 신청이 있으면 특허청장은 정부사용을 인정하는 것으로 한다고 규정하였다. 사실상 보건부장관의 판단만으로 정부사용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이처럼 독일과 캐나다가 팬데믹 선언 직후 발 빠르게 특허법 개정을 하였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우리나라는 코로나 확진자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때였다. 그때 우리는 ‘정부사용을 위한 강제실시’ 규정을 정비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감염병 대유행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교훈 삼아 특허법 제106조의2를 정비해 둘 필요가 있다. 지금껏 이 조항과 관련된 것이라고는 보상금 지급에 관한 대통령령 외에는 전무(全無)하였다. 그 결과 제106조의2에서 말하는 “정부 외의 자”가 누구를 가리키는지도 알 길이 없다. 해석론으로는 “정부의 업무를 위임받는 등 일정한 범위의 제3자”를 말한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대통령령으로 그 범위를 구체화해 놓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박성호 교수(한양대 로스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