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와 과일의 섭취가 심혈관질환, 당뇨, 호흡기질환, 일부 암 등 만성질환의 위험을 줄인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채소와 과일의 섭취를 권장하고 있다. WHO의 섭취기준은 채소와 과일을 합쳐 하루 최소 400g이다. 영국은 이 기준에 따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개인별 필요 열량에 따라 채소와 과일을 구별하여 기준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필요 열량이 2,200~2,400㎉인 사람은 하루 채소 3회분(240g)과 과일 2회분(160g)이다. 서구의 1회분(portion)은 80g이다.
우리나라의 채소·과일 권장 섭취량은 미국보다 많다. 예를 들어 필요 열량이 2,200~2,400㎉인 사람은 하루 채소 8회분과 과일 2~3회분이다. 우리나라의 1회분은 음식 종류별로 다르게 정해져 있는데 생채소·나물은 70g, 김치·깍두기는 40g, 보통 과일은 100g이다. 이 기준을 달성하려면 매끼마다 생채소나 나물을 작은 접시 2개만큼 먹고, 하루에 김치나 깍두기 2회, 과일 1/2개 2~3회 먹으면 된다. 이렇게 먹으면 채소 500g, 과일 200~300g이다.
채소와 과일은 많이 먹을수록 건강에 좋은 것일까. 상충되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런던대학교(UCL) 팀은 65,226명에 대한 8년간 자료를 분석하여 채소·과일을 많이 먹을수록 사망률이 감소한다고 보고했다(2014년 논문). 사망률은 채소·과일을 1회분(80g) 미만 먹는 경우보다 1~3회분 미만은 14%, 3~5회분 미만은 29%, 5~7회분 미만은 36%, 7회분 이상은 42% 더 낮았다.
이와 달리 하버드 팀은 채소·과일 섭취가 약 5회분을 넘어서면 사망률이 더 이상 감소하지 않는다고 보고했다(2021년 논문). 가장 최신이고 최대 규모인 이 연구는 2개 코호트(30년간 추적한 여성 66,719명, 남성 42,016명)를 조사하고 26개 연구를 메타분석 했다. 2개 코호트 조사에서 사망률은 채소·과일 섭취 증가에 따라 감소하다가 5회분 구간(평균값 5.3)에서 최저에 이르고 그 구간을 지나면 다시 상승했다. 16개 메타분석과 유럽 10개국 45만 명 연구 결과도 5회분이 채소·과일 섭취의 한계치라고 보고했다.
섭취의 한계치는 채소와 과일을 구별해서 이해해야 한다. 과일은 당분 때문에 건강 효과가 채소와는 큰 차이가 있다. 과일은 어느 수준(UCL 보고는 4회분, 하버드 보고는 약 3회분) 이상 섭취하면 사망률이 증가한다. 과일은 지나치면 해가 된다. 그러나 채소는 아무리 많이 섭취해도 사망률이 증가하거나 해롭다는 보고가 없다. 채소의 사망률 감소 효과는 과일의 4배이다(2014년 논문).
식물이라고 다 좋은 음식은 아니다. 전분 음식(감자, 옥수수 등)이나 과일 주스는 건강에 해가 될 수 있다. 전분 음식은 심혈관질환, 고혈압, 체중증가, 당뇨 등과 상관있다. 과일 주스는 신선 과일과 달리 많이 먹을수록 체중이 늘고(2015년 논문), 당뇨 위험이 높아진다(2013년 논문).
고승덕 변호사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