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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조인대관
권석천의 시놉티콘
딸의 생명권이냐, 애끓는 모성이냐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01-3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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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아내를 살해한 사건이 있다. 부부는 20여 년간 넉넉하진 않지만 성실하게 살아왔다. 어느 날 갑자기, 아내의 보증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 남편마저 직장을 잃는다.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올라온 두 사람은 공원에서 노숙하는 신세가 된다.

지병이 있던 아내는 삶의 의욕을 잃고 남편에게 죽여 달라고 애원한다. 남편이 남은 돈을 털어서 아내가 좋아하는 단팥빵을 사지만 아내는 빵을 삼킬 기력조차 없다. 그날 밤 남편은 아내를 숨지게 한 뒤 새벽까지 넋이 나간 상태로 있다가 경찰에 자수한다.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판사 시보에게 판결문을 작성해보라고 한다. “동의살인으로 집행유예다.” “명백한 살인으로 실형이다.” 피고인 쪽에 서서 동기 연수생들과 치열한 토론을 거친 시보는 자신이 쓴 판결문을 동기 앞에서 흐느끼며 읽어간다.

“판결. 살인. 징역 6년. 피해자는 살해를 거부하기엔 극도로 쇠약한 상태였고…범행동기에 있어서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달리 도움을 구할 방법이 없었다고 말할 수 없기에….”

어느 쪽이 우선하는 가치인가
집행유예로 법 절차 끝났지만
나는 물음을 풀지 못하고 있다


2003년 일본에서 방영된 드라마 <비기너>의 한 장면이다. 이 장면을 떠올린 건 어떤 판결 기사를 읽으면서다. 뇌병변 1급인 중증 장애인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60대 여성 A씨 사건이었다.

38년간 딸을 극진히 돌봐 온 A씨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범한 것은 딸이 대장암 3기 진단을 받은 후였다. A씨는 딸이 혈소판 수치 감소로 항암마저 중단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수면제를 먹인다. 자신도 수면제를 먹었으나 아들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진다. 어머니는 최후진술에서 오열한다. “버틸 힘이 없었어요. 혼자 살아남아 정말 미안합니다.”

지난 19일 선고 공판에서 인천지법 형사14부(류경진 부장판사)는 A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아무리 어머니라고 해도 딸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 다만, 그동안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도 큰 죄책감 속에 삶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국가의 지원 부족을 지적하면서 “오로지 피고인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실형과 집행유예, 어느 쪽이 옳을까. 검찰의 항소 포기로 모든 법 절차가 마무리됐지만 나는 어느 쪽이 정답이라 답할 자신이 없다. 그토록 사랑했던 자식을 스스로의 손으로 보냈던, 그 지옥 같은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그 애끓는 마음을 비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인간이 지켜야 할 가장 존엄한 가치 아닌가.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법은 엄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해 암 투병 중 절망 끝에 발달장애인 딸을 살해하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던50대 어머니에게 징역 6년의 실형을 선고한 안산지원(1심)과 수원고법(항소심) 재판부도 고뇌의 강도는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신뢰하고 사랑했을 피고인의 손에 생을 마감한 피해자가 겪었을 정신적, 신체적 고통은 가늠하기 어렵다…. 피고인이 홀로 피해자를 양육해온 점 등을 참작….”

사람이 사람을 재판한다는 건 사명감 없이는 해낼 수 없는 극한의 직업이다. 머리(법 논리)로만 해서도 안 되고, 가슴(감정)으로만 해서도 안 된다. 절절한 사연에 울컥 눈물이 쏟아져도 참아야 하는 게 판사다. 그래야 사람들이 판결이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오늘도 재판하는 일의 괴로움을 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전국의 법관들께서 새해 인사와 함께 한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다. 부디 여러분의 양심이 편치 않길 바란다. 마지막 순간까지 노심초사하며 불면의 밤을 보내시길 바란다. 그러할 때 좋은 판결이 나올 수 있으므로.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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