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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논단
[법신논단] 사찰을 허(許)하라
김종민 변호사(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2023-01-3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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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를 운영하는 유력 정치인의 배우자가 있다. 그 정치인에게 부탁할 중대 현안이 있는 기업이 그곳을 통해 회사에 설치할 고가의 미술작품을 구입하면 합법적 거래일까 뇌물일까. 2021년 5월 김부겸 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문제 된 라임자산운용의 비공개 사모펀드도 마찬가지다. 김 전 총리의 딸 가족이 판매수수료 0%, 환매제한도 없는 펀드에 12억을 투자했는데 당시 행안부 장관이던 김 전 총리 딸 가족을 위한 ‘맞춤형 로비 펀드’가 아닌지 논란이 컸다. 실체적 진실은 알 수 없지만 권력형 부패가 비집고 들어갈 허술한 틈이 너무나 많은 현실은 결코 간단치 않다.

문제는 제도다. 범죄는 첨단화, 글로벌화를 향해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데 이를 수사하고 처벌할 형사사법제도는 수 십 년째 제자리다. 검사의 부패범죄 입증책임 원칙은 변함이 없고 검사 작성의 피의자신문조서가 법정에서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도록 형사증거법은 오히려 후퇴했다. 해외로 도피한 범인의 범죄인인도와 국제형사사법공조의 높은 벽은 여전하다. 자백에 의존하지 않는 과학수사, 환부만 도려내는 정밀한 수사를 요구하지만 구체적 수단은 너무나 무력하다. 첨단화 된 중대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권력형 부패와 마피아 조폭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으로 가는 예정된 미래가 우리 현실이 될 것인가.

2000년 파리지방검찰청에서 연수할 때 휴대폰 감청이 광범위하게 수사에 활용되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단순한 매춘 조직 수사였는데 수개월간의 통신감청을 기본적인 수사방법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범죄수사를 위한 계좌추적영장도 필요 없다. 검사들은 검찰청에 들어와 있는 재무부 금융정보시스템(FICOBA)을 이용해 프랑스 내에 개설된 모든 금융계좌를 검색할 수 있다. 기간에 상관없이 구체적인 계좌 거래내역은 국세청에 행정공문으로 요청하면 되고 2~3일 내에 회신된다. 우리는 법원의 계좌추적 영장을 받아야 된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한국은 부패가 만연해 있을 것”이라고 했던 프랑스 검사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찰(查察)은 ‘민간인 사찰’과 연관되며 우리 사회의 금기어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정치인에게 뇌물을 주는 방법으로 누군가 합법을 가장해 그의 배우자가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고가의 미술작품을 구입하고 있다면 수사기관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현재 진행중인 국정원의 국가보안법 간첩 사건도 ‘민간인 사찰’이 필수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는데 내사 또는 수사와 사찰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프랑스는 2004년 형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706-80조에 국가의 근본적 이익을 침해하는 범죄, 테러, 부패범죄, 조직범죄 등 수사에 ‘사찰’인 감시처분(surveillance)을 제도화 했다. 자금세탁, 범죄수익은닉 등은 물론 환경범죄 등에도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사법적 통제’다. 사법경찰이 감시처분 수사를 하려면 반드시 사전에 검사 또는 수사판사(juge d’instruction)에게 보고해야 한다. 부패 등 중대범죄 대응을 강화하기 위해 2006년 도입한 입증책임 전환 규정도 중요하다. 프랑스는 형법 321-6조와 321-6-1조를 신설해 당사자에게 정당한 자금출처를 소명하도록 하고 이를 소명하지 못할 경우 그 자체로 3년 이하 구금형과 7만5000유로(약 1억 원) 벌금으로 처벌한다. 미성년자가 본인의 자금출처를 소명하지 못하면 5년 이하 구금형과 15만 유로(약 2억 원) 벌금으로 가중 처벌한다.

힘없는 정의는 무력하다. 대형 비리 의혹이 터져 나올 때마다 신속한 검찰수사로 이를 밝혀 처벌하라는 여론의 목소리가 높지만 검찰은 결코 만능이 될 수 없다. 수사환경과 여건이 바뀌면 그에 맞춰 수사조직과 수사수단도 변해야 한다. 효과적인 형사사법을 위해 수사권을 강화하되 그에 비례해 사법통제도 강화하면 된다. 한비자는 “일이 많은 시대에 살면서 일이 적던 시절의 그릇을 사용함은 슬기로운 사람의 대비책이 아니다”라고 했다. 법무부와 검찰 형사정책의 현주소와 문제점을 검토해 수사조직과 기능 전반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급변하는 첨단 범죄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사회의 몫이다. 사찰을 허(許)하라.


김종민 변호사(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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