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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新)과 함께
[법의 신(新)과 함께] 나를 일하게 하는 것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2023-02-06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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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날이 찾아올 때가 있다. 하루 종일 회의가 이어지는 날. 예상치도 못한 업무 전화가 생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날. 업무량도 유난히 많은데, 생소한 분야이기까지 해서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날. 까딱하면 실수할 것 같다는 불안감에, 정신을 한 데 집중하는 데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드는, 그런 날이 있다. 업무 마감 기한이고 뭐고, ‘오늘은 이제 그만’을 외치고 찜찜한 마음으로라도 일단 퇴근부터 하고 싶은 날. 그럴 때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옛날 기억을 잠깐 되짚어본다. 손에 익지 않았던 업무를 머리를 쥐어 뜯어가며 해냈던 날들을, 실력에 비해 많은 양의 업무를 어떻게든 완수해냈던 지난날들을.

지금보다 더 미숙하고, 더 느렸던 나를 신나게 일하게 해주었던 것은, 처음에는 향상심이었다. 실무경험을 쌓아간다는 것은 생각보다 더 흐뭇한 일이었다. 할 줄 아는 것이 많아진다는 것, 어떻게든 밥벌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쌓여가는 것이 참 좋았다. 처음으로 내 이름 석 자를 소송대리인으로 서면에 올렸을 때, 처음 법정에서 마이크를 켜고 떨리는 목소리로 변론을 했을 때, 집행 현장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가 그곳에 있던 집행관분께 실무에 대한 이런저런 가르침을 역으로 받았을 때의 기억들이 꽤나 기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사건을 이겼을 때의 쾌감, 도저히 맞출 수 없을 것 같던 프로젝트 기한을 마지막에 어떻게든 준수했을 때의 쫄깃함은 매일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였다. 열심히 살아낸 하루들이 쌓여 좀 더 유능한 나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믿음은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했다.


처음엔 ‘향상심’이 신나게 일하게 해줘
그 후엔 ‘주변 사람의 인정’이 동기부여
어느새 이렇게 일해 온 지 10년 차
이젠 ‘힐링푸드’가 최고라는 생각이
뱃속 뜨끈하게 데우고 다시 일하러


업무가 어느 정도 손에 익어, 향상심의 약발이 떨어져 갈 때쯤, 나에게 동기부여가 되어 주었던 것은 주변 사람들의 인정이었다. 나는 다행히도 유능하고 친절한 사수한테서 일을 배웠다. 사수는 ‘잘하셨습니다. 노고 많으셨어요.’라는 친절한 말을 메일 본문에 써줬지만, 늘 추신과 첨부파일로 추가로 검토해 쟁점을 알려주고, 참고자료를 전달해 주곤 했다. 사수에게 보고한 서면 초안에도 ‘변경내용 추적’ 기능으로 빨갛게 표시된 문장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수는 ‘이견 없습니다’ ‘원안으로 진행해 주시면 되겠습니다’라는 간단한 코멘트만으로 피드백을 마치기 시작했다. 그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문장이 내 실력을 믿어준다는 말처럼 느껴져서, 신이 나서 일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고과면담 때, ‘알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지금 잘하고 계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어쩌면 의례적인 말이었는지도 모를) 그 짧은 말 한마디에 고갈되어 가던 에너지가 충전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 경력도 쌓이고, 나이도 먹은 지금, 나는 무엇으로 나를 일 하게 해야 할까?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인정은 언제나 효과적인 동기부여 요소이지만, 항상 원하는 만큼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주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일하느라 바쁠 때는 격려를 해줄 틈이 없고, 오래 같이 일한 사이일 때는 새삼스럽게 칭찬을 주고받지 않는다). 어느새 이렇게 일을 해온 지 10년 차가 되니, 이럴 땐 힐링푸드가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나는 개인적으로 힘들 때 순대국밥이나, 굴국밥, 곱창전골을 먹으면 힘이 나는 걸 느낀다). 술은 잘 마시지는 못하지만, 가끔 곁들이면 에너지 증폭기처럼 반짝, 하고 힘을 내주는 효과가 있다. 왜 아버지 세대의 많은 분들이 퇴근하면서 술을 드셨는지 이제 이해가 가기도 한다. 힐링푸드든 술이든, 여기에 의존하면 안 되겠지만, 때로는 아주 훌륭한, 단기적인 해결책이 되어준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다.

오늘도 미팅만 여러 개 참석하다보니,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이제부터 검토하고 정리해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 이럴 땐 뜨끈한 순대국밥 한 그릇이 필요하다. ‘밥 좀 먹고 해도 늦지 않아, 깔끔하게 마무리 짓고, 기분 좋게 퇴근합시다.’ 뱃속을 뜨끈하게 데우고, 스스로 격려의 말을 던지며, 다시 일하러 가봐야겠다.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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