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누군가를 떠올려보자. 그의 첫인상은 어땠는지,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 보자. 첫인상은 관계도 운명도 바꿔 놓을 수 있다. 그만큼 중요하다. 첫인상이 결정되는 데는 ‘90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 안에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 니콜라스 부스먼이 〈90초 첫인상의 법칙〉을, 이케가미 아키라가 〈90초 스피치〉를 쓴 이유다.
우주의 나이는 137억 9,800만 년±3,700만 년, 지구의 나이는 45.4억 년±0.5억 년이라고 한다. 지구에 생물이 탄생한 것은 약 38억 년 전이고, 인류와 비슷한 동물이 약 25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이 약 10만~20만 년 전 처음 출현했다고 한다. 이러한 거대 시간에 비하면 90초는 찰나 중의 찰나다. 그러나 이 90초는 일상의 관계, 운명, 사업, 인생, 생사를 바꿔놓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리 보면 법조인 역시 90초에 충실해야 함은 법정이나 검사실이나 변호사 사무실에서, 그리고 표정이나 말씨뿐만 아니라 이것을 대신하는 서면에서 모두 예외가 아니지 않을까?
미국 핵과학자회가 지난 1월 24일 ‘운명의 날 시계’(Doomsday Clock)가 23시 58분 30초를 가리킨다고 발표했다. 마지막 자정까지는 불과 ‘90초’ 남았다는 것이다. 이 시계는 핵에 의한 인류 종말을 경고하기 위해 핵과학자회가 아인슈타인 등 원자폭탄 개발프로젝트의 주요 과학자들과 함께 만들었다고 한다. 가상의 시계지만 현실의 시계에서의 90초와 묘하게 대조된다. 더구나 1947년 첫 설정 이후 자정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다고 하니, 섬뜩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등으로 핵 위협이 증가하고 기후 위기가 커지는 것 등이 분침을 앞당긴 주요 이유라고 한다. 누가 어떻게 이 90초의 운명을 바꿀 것인가. 해답을 모르지 않는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40억 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자연선택의 법칙에 따라 진화했다.”, “하지만 21세기에 …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선택의 법칙을 깨기 시작하면서, 그것을 지적설계의 법칙으로 대체하고 있다.”라고 썼다(마지막 장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에서). 「후기」에 밝힌 그의 경고는 가슴을 후빈다.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강력한 힘을 떨치고 있지만, 이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서는 생각이 거의 없다. 이보다 더욱 나쁜 것은 인류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무책임하다는 점이다. … 오로지 자신의 안락함과 즐거움 이외에는 추구하는 것이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결코 만족하지 못한다.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그의 경고가 단지 경고에 그치기만 바랄 뿐이다.
김지형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전 대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