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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조인대관
권석천의 시놉티콘
무주택자 무시하면서 짐승들처럼 들떠 있었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2023-02-13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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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요즘 80년대 학번 선배들 만나면 부동산 얘기밖에 안 해요. 난 집 있어서 다행이다, 집 없어서 죽고 싶다, 누구는 강남에 아파트 있어서 좋겠다…. 이러려고 대학 때 학생운동 한 건가요?”

그러니까 2년 전이었다. 88학번 후배가 어느날 저녁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서늘하게 했던 그의 말이 떠오른 건 며칠 전, 유튜브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면서였다.

‘당시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아파트 값을 계속 얘기하는 사무실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무주택자들을 은근히 혹은 대놓고 무시했다. 집 있는 사람들은 야생 짐승들처럼 들떠 있었다. 그들은 주변 동료들은 의식하지 않은 채 모두가 듣게 아파트 값을 매일 얘기했다. 너무 신이 나서.’

사실이다. 지난 3, 4년간 어느 모임을 가든 다들 아파트 값 이야기만 했다. 아파트 없는 동석자들에겐 앞날이 걱정된다는 듯 혀를 차곤 했다. “대체 어쩌려고 그래요? 지금이라도….” 동정의 코스프레도 잠시, 다시 흥미진진한 '부동산 무용담'이 오가면 무주택자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됐다.

대기업 임원들이 ‘근로의욕 상실’을 걱정할 정도였다. “후배들이 ‘아파트 한 채로 10억, 20억씩 버는데 열심히 일해서 뭐하느냐’고들 해요. 솔직히 일할 맛 나겠습니까?” 영혼을 끌어모은다는 ‘영끌’이란 단어가 부동산 시장에 등장한 것은 그런 분위기 속에서였다.

“종일 아파트값만 얘기했다”
‘영끌’ 절벽 가파르게 한 건
집으로 사람 평가한 우리다


영끌의 주력부대는 젊은 세대였다. ‘패닉 바잉’은 30대를 2021년 서울 아파트 최다 매입(33.5%) 연령대로 끌어올렸다. 부동산 가격 급등 속에 기회를 놓치면 영영 집을 사기 힘들 것이란 공포에 붙들려 묻지마 매입에 나섰던 것이다.

그때 쫓기듯 집을 샀던 이들은 이제 훈계의 대상이다. “대출이자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게 그냥 전세로 살지, 영끌을 왜 했어?” 건전한 시민으로 직장에서 자기 몫을 하고 있는 그들을 ‘투기하다 실패한 루저’라 치부해도 되는 걸까.

투자는 개인의 책임이다. 정부의 정책 실패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끌의 배경 중 하나가 거센 사회적 압박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동영상의 댓글은 말한다. ‘출산율이 붕괴하고 있는 이유가 단순히 집값 때문은 아니다’고. ‘아파트값 하나로 본인의 가치를 매기고 남의 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사람들이 많은 것 자체가 한국 사회의 미래가 어두운 이유’라고.

나는 그 지적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재테크 성공 여부로 인격을 평가하는 ‘몹쓸 일원론’이 횡행한다. 아파트값이 오를 땐 아파트 없는 사람이, 주식이 오를 땐 주식 없는 사람이, 비트코인이 오를 땐 비트코인 없는 사람이 루저가 된다. 그렇게 정신 없이 루저 취급당하다 막판에 영끌한 사람이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피해자다.

이런 사회의 이데올로기는 결국 각자도생이다. 이철승 서강대 교수는 《쌀 재난 국가》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중산층이 보편적 안전망 수립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긴 아파트 한 채만 있으면 노후가 보장되는데, 무슨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려 할 것인가.

‘영끌’ 현상은 무능한 정책과 더불어 그 사회의 수준을 말해준다. 나는 한국 정치가 부박(浮薄)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사회적 의식과 무관치 않다는 혐의를 거둘 수 없다. 젊은 세대를 영끌의 절벽으로 내모는 사회가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할까. 기성세대가 이 상황에 조금의 책임도 느끼지 못한다면 한국은 그저 돈 놓고 돈 먹기나 하는 싸구려 카지노일 뿐이다.


권석천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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