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련된 무능은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소스타인 베블렌이 고안한 개념으로 문제에 대한 해결은 물론 문제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철저히 무능한 집단 혹은 상태를 말한다. 베블렌은 처음에는 엔지니어링이나 사회학에서 필요한 기술을 습득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처리의 미숙을 지적하는 의미로 사용했으나, 지금은 해당 분야에서 요구되는 기술 혹은 기법을 익히기는 했으나 기존에 학습하지 않은 상황이 닥치면 그것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우둔한 현상을 가리키는 의미로 확대됐다.
설사 문제를 인식하기는 했으나 그 해결책은 그 문제해결에 맞게끔 변용 혹은 응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태의연하게 기존에 학습된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결국 문제해결에 실패하는 때도 이 범주에 포함됨은 물론이다.
비유하자면, 이는 귀를 간지럽히는 귀지를 긁어낸다며 포크레인 기사가 포크레인을 귀에다 대는 것과 같다. 간단하게 면봉만 사용하면 해결될 것을 자신이 포크레인을 능숙하게 구사한다면서 이걸 이용해 귀지를 파낸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라는 점은 누구나 잘 알 것이다.
2023년, 대한민국은 이 훈련된 무능으로부터 자유로운가? 작년 10월 이태원에서는 149명의 젊은이들이 압사당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미 예년의 경험을 통해 10여만 명의 군중이 집결한다는 점이 알려져 있었다.
올라오는 행인과 내려가는 행인이 서로 엇갈려 갈 수 있게끔 현장에 중앙분리대만 설치했다면, 경찰 2~3명 정도의 인력이 안내역할만 했더라도 이 끔찍한 참사는 방지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전형적인 훈련된 무능을 본다. 경찰의 임무는 남의 물건을 훔친 도둑을 잘 잡는 것도 일이지만, 미리 대규모 사고의 발생이 예견된 경우에는 합당한 대책을 세워 대처하는, 사고 예방기능도 경찰의 중요한 임무이다.
《총, 균, 쇠》의 저자인 제레드 다이아먼드 교수는 뉴기니에서 연구활동을 많이 한 학자이다. 그런데 그가 뉴기니에서 관찰한 것은 부족 간의 끊이지 않는 전쟁이었다. 외부인인 데다가 이들을 중재하거나 전쟁을 중단시킬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닌 터라 안타까운 마음만 간직한 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뉴기니가 호주연방에 편입돼 정식 국가의 통제를 받게 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호주 정부에서는 뉴기니에 파출소, 그것도 직원이 단 1명만 있는 파출소를 설치했더니만 부족 간의 전쟁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다른 부족에 대한 앙금이 있으면 그 파출소를 찾아가 하소연을 하면 그 파출소 직원은 다른 부족의 족장이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불러 중재나 민원 해결을 한 것이 주효했다.
이처럼 국가의 주된 기능은 개인 혹은 집단, 계층 단위 사이에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발생할 수 있는 격한 충돌이나 사고의 발생을 예방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2023년, 대한민국 정부는 과연 국가의 이 임무를 충실하게 준수하고 있는가?
주영진 법무사(다힘 법무사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