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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新)과 함께
[법의 신(新)과 함께] 귀에 들리는 ‘법’
정거장 검사(서울중앙지검·<슬기로운 검사생활> 저자)
2023-02-16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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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보자 새해 계획을 세우곤 곧장 서점을 찾았다. 그런데 책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매대와 서가마다 책들이 즐비했지만 혼란스러웠다. 거창한 뷔페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지 못 정하는 심정이랄까. 게다가 적어도 2년마다 임지를 옮기는 나에게 무겁고 부피가 큰 책은 골칫덩이이기도 해서 쉬이 책을 살 수 없었다. 내년을 기약해야 하나 싶던 그때, ‘전자책’이 떠올랐다.

일단 전자책은 고르기 쉽다. 유럽 역사가 궁금하면 검색창에 ‘유럽’만 적으면 끝이다. 그러면 눈앞에 관련 서적이 정렬한다. 작가들의 다른 작품을 발굴하기도 용이하다. 또 전자책에는 마음껏 밑줄을 긋고, 메모를 적을 수 있다. 밑줄 친 문장들은 차곡차곡 저장되므로 언제든지 꺼내 음미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기능은 ‘낭독’. 재생 버튼만 누르면 AI 성우가 책을 읽어준다. 눈을 감고 쉬고 싶을 때까지도 독서에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

대학을 졸업하려면 봉사시간이 필요했다. 신입생 때부터 꾸준히 봉사활동을 할 것을, 졸업을 코앞에 두고 시작하려니 봉사할 곳이 마땅찮았다. 교내에 제법 소문난 봉사기관은 이미 만석. 그러다가 작은 점자도서관을 발견했다. 자원봉사자 조건은 간명했다. ‘매주 2회 이상 꾸준히 봉사가 가능한 사람’.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 위해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일은 간단했다. 다른 자원봉사자가 책을 녹음하면 녹음 파일을 들으며 잡음을 지우고, 잘못 낭독한 곳을 수정하는 일이었다. 편집을 마친 녹음 파일은 오디오북으로 발간됐다. 가만히 앉아 봉사시간을 채울 수 있겠다 싶어 매주 도서관을 다녔지만 끈기 없는 성미가 어디갈까. 매주 두 번, 오후를 통째로 반납해야 하다 보니 지겨워졌다. 고등학교 때처럼 휴지나 잠깐 줍고 봉사시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은 없을까 기웃거렸다.

형사절차 전 과정은 ‘종이’로 진행
본인 사건에 제출된
서면과 공소장, 판결문도 ‘들을’ 수 있는
‘법’이 귀로 읽히는 시대 기대


‘가성비’가 괜찮다는 봉사기관에 자리가 났다. ‘그만할게요!’라는 말을 수십번 연습하면서 도서관을 찾았다. 언제 말을 꺼내나, 마음 졸이며 사무실을 들락거렸다. 퇴근 무렵이었던가? 노신사가 아들의 팔꿈치를 잡고 도서관에 들어왔다. 그는 서고에서 책을 한 권 골랐다. 공지영 작가의 《즐거운 나의 집》. 3주의 편집을 거쳐 내놓은 나의 첫 작품이었다. 그는 요새 책을 듣는 재미로 산다고 했다. TV는 보이지 않는 화면 탓에 시력을 잃기 전이 떠올라 화가 치밀지만, 책을 들으면 엄마 무릎에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라 편하다고 했다. 감긴 눈 위로도 보이는 그의 웃음 덕에 몇 권의 오디오북을 더 편집했다.

형사절차는 ‘전자’로 진행되는 민사절차와 달리 수사, 공판, 집행의 전 과정이 ‘종이’로 진행된다. 검사도 종이 공소장에 서명을 하고 도장을 찍는다. 몇 년 전, 시각장애인인 피고인이 법원에 ‘판결문을 점자 인쇄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후로 법원은 ‘점자 판결문’ 서비스를 시행 중이지만 일각에선 시각장애인이 원활히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사건결과통지서 같은 우편 송달물에 음성변환용 바코드를 집어넣는 시스템을 정비 중이지만 아직 준비단계이다.

때마침 형사절차가 전자소송으로 대전환을 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AI 성우가 시각장애인에게 전자책을 읽어 주듯 서면을 읽어주는 기능을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려 본다. 시각장애인인 피고인은 재생 버튼만 누르면 공소장, 판결문뿐만 아니라 증거서류들도 확인할 수 있으니, 공판 과정에서 충분히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수사 단계에서도 스스로를 방어하기 용이해 진다. 매번 검찰이나 법원에 점자 인쇄를 요구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고, 음성변환용 바코드가 찍힌 우편물을 어디에 뒀는지 찾는 불편을 겪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사건에 접속하면 언제든지 제출된 서면을 ‘들을’ 수 있다. 법이 그들의 감긴 눈을 넘어 귀에도 들리기를, 법을 눈으로 읽는 시대에서 귀로 읽기도 하는 시대로 나아가기를 소원해 본다.


정거장 검사(서울중앙지검·<슬기로운 검사생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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