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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법원과 압수·수색영장
곽경직 대표변호사(법무법인 KNC)
2023-02-20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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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대법원규칙의 개정을 통하여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하는 절차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걸 추진하고 있다. 법원이 사전에 심문기일을 열어 압수·수색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를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설명자료를 공포하여, 이런 제도는 “미국에서는 이미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는 절차”라고 한다. 그런가?

미국은 수정헌법 제4조에 따라, 선서 또는 확언에 의해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게 뒷받침이 될 때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될 수 있다.[1] 미국 연방형사소송규칙을 보자. 원칙으로, 판사에게 선서진술서 또는 기타 정보가 제시되고, 그에 의해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할 그럴만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되면, 판사는 반드시 영장을 발부하여야 한다. 여기에 약간의 변주(變奏)가 따른다. 선서진술서가 제시되었을 때, 판사는 선서진술자와 그가 내세우는 증인을 불러 선서를 시킨 후 물어볼 수 있다. 상황에 따라 판사는 선서진술서 없이 선서한 증언만 듣고 영장을 발부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 선서와 확언, 즉 선서진술서를 제출하거나 판사의 요구에 따라 출석하여 선서 진술을 하는 사람은 검사, 수사관 또는 그들이 내세운 사람이다.[2] 판사가 임의로 아무나 불러 물어보는 제도는 없다.

[각주1] “선서”는 Oath, “확언”은 affirmation. “상당한 이유”의 원문은 probable cause인데, 압수·수색을 하여야 할 그럴만한 사유라는 뜻이다.
[각주2] Rules 41(d)(1), 41(d)(2)(A), 41(d)(2)(B) of Federal Rules of Criminal Procedure.


대법원은, “대면심리의 대상은 통상 영장을 신청한 경찰 등 수사기관이나 제보자 등이 될 예정”이라고 하지만, 말을 이런 식으로 하면 곤혹스럽다. 대체 “통상”이 무슨 뜻인가? 대법원의 의도가 미국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사법경찰관, 검사 또는 그들이 내세우는 사람으로 심리절차의 참여대상을 한정하여야 하지만, 정작 대법원규칙 개정안(형사소송규칙 제58조의2)을 보면, 법원이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불러 심문하겠다고 되어있다. “필요한 정보를 아는 사람”이란 도대체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막연하기 짝이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이거다. 일단 법규로 제정이 되면, 변호사들이 다 알아서 피의자 또는 그의 조력자들이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 주장할 것이고, 법원은 사안에 따라 그렇다고 수긍하여 그들을 불러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심문을 할 것이 뻔하다. 또 곰곰 생각해 보면, “필요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 것이고, 그러고 보면, 피의자가 여기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통상”이란 표현도 그렇고, “미국에서 이미 도입하여 활용하고 있는 절차”라고 선전하면서, 미국의 법규와 전혀 다른 “필요한 정보를 아는 사람”이란 문구를 집어넣은 건 필자의 눈에 부정직하고 불성실하게 보인다.

우리가 여기서 논의하는 건 구속이 아니다. 구속은 영장 발부 전에 심문절차를 열어 피의자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는 게 맞다. 그러나 증거의 수집을 위한 압수·수색은 다르다. 압수·수색의 밀행성과 전격성(電擊性)은 소금의 짠맛과 같다. 먼저 피의자에게 심문기일을 통지하여 불러서 물어보고 난 연후에 압수·수색영장의 발부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면, 일이 어떻게 제대로 되겠는가?

대법원은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심문제도는 임의적인 절차로 “일부 복잡한 사안에서 제한적으로 실시될 것”이라 한다. 이건 부작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는 게 아니고, 오히려 더 큰 문제다. 하려면 구속의 경우와 같이 누구에게나 혜택을 부여해야 옳다. “일부 복잡한 사안”이란 대체 무슨 사건을 두고 하는 말인가? 권력, 부, 명예를 가진 사람들의 사건에 제한적으로 운영될 것이라고 짐작하면 오산이라고 단정할 수 있나?

제도의 당부와는 별개로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피의자를 심문하는 제도는 헌법과 법률에 정한 바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 없는 제도다. 대법원규칙으로 없는 제도를 새로 만들겠다는데, 대법원의 이러한 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대법원에 그런 권한이 있기는 한가?

우리도 대법원이 제정한 형사소송규칙이 있고, 미국도 연방대법원이 제정한 연방형사소송규칙이 있다. 둘 다 최고법원이 제정한 것이고, 법규의 명칭도 같아 같은 성격의 것으로 착각하기에 십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둘은 전혀 다르다. 미국은 우리의 형사소송법에 상응하는 법률이 없다. 대신에 미국대법원이 제정한 연방형사소송규칙이 있고, 여기에 우리 형사소송법에 규정한 것과 같은 항목의 내용이 들어 있다. 어떠한 연유로 이렇게 되었을까? 그것은 미국 의회가 형사소송법을 제정하지 아니하고, 아예 그 권한을 통째로 미국 연방대법원에 부여하였기 때문이다. 미국대법원이 연방형사소송규칙을 작성하면 그것으로 법의 효력을 갖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의회에 송부되고, 미국 의회가 이걸 승인하여 공포할 때 비로소 법의 효력을 갖는다.[3]

[각주3] The Rules Enabling Act 28 U.S.C. §2072.

우리는 사정이 다르다. 헌법 제12조 제1항은 압수·수색 법률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이것을 받아, 국회가 제정한 법률인 형사소송법이 있다. 원칙으로,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데 필요하고, 피의자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정황이 있으면,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하여 검사의 청구로 판사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한다. 예외적으로 이런저런 경우 영장 없이 압수·수색할 수도 있다. 영장의 청구와 발부 및 집행에는 구구한 절차와 방식을 따라야 한다. 이러한 상세한 내용이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다(제215조, 제216조, 제217조, 제218조, 제218조의 2, 그리고 제219조에 의하여 준용되는 제106조 등 다수의 조문).

압수·수색은 국민의 권리에 관한 것이고 사회의 안녕질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그래서 헌법이 법률로 정하라고 하고 있다. 헌법 제108조는, “대법원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을 반복해서 읽어보라.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라고 못 박고 있다. 대법원규칙은 대법관회의의 의결, 즉 대법관 전원의 3분의 2 이상의 출석과 출석인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대법원규칙으로 헌법과 법률에 없는 제도를 만들 수 없다. 헌법은 그런 권한을 대법원에 준 적이 없다.

글은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인데, 대법원의 설명자료는 이르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개정안의 핵심인 형사소송규칙 제58조의2를 보면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피의자심문제도를 도입하자는 것이고, 여기에 전자정보에 관한 사항은 들어 있지 않다. 그러면서도 설명자료에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정보 등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을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둘은 별개의 문제다.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이 문제가 된다 해서 압수·수색영장 발부 전 피의자심문제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니다. 전자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에 관한 문제는 논의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국민이 모두 주시하고 참여하는 가운데 국민의 대표가 모인 국회에서 논의되고 결정될 일이지, 대법관회의에서 정할 사안이 아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에 많은 불의가 있어도 놀랄 일이 아니지만, 법치주의를 들먹이는 사람은 조심해야 한다. 요즘은 법으로 포장된 불의가 많기 때문이다. 껌벅 죽지 말고 차분히 하나씩 따져보자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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