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조조, 마오쩌둥, 다케다 신겐이 애독하였다는 손자병법이지만, 독일의 황제 빌헬름 2세가 만 년에 뒤늦게 손자병법을 읽고 남겼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만일 20년 전에 손자병법을 읽었더라면 그렇게 무참하게 패하지는 않았을텐데.”
흔히들 손자병법하면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을 떠올리지만 실은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가 맞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이다. 일찍이 손자(孫子)는 아래와 같이 말하였다. “옛날에 전쟁을 잘했던 자는 먼저 적이 나를 이길 수 없게 만들고 이어서 내가 적을 이기게 될 때를 기다렸다. 지지 않음(不敗)은 나에게 달려있고, 이길 수 있음은 적에게 달려있다. 따라서 전쟁을 잘하는 자는 적에게 패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적을 항상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이렇듯 손자는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하였을 리가 없다. 지피지기는 오로지 나의 몫이지만, 승리는 절대로 나 혼자서만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피지기는 정말 중요한데 참 어렵다. “세상에는 아주 단단한 것이 세 가지 있다. 강철, 다이아몬드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인식이다.”라는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상대방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인식 역시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게다가 지피지기를 방해하는 3가지 요인이 있는데, 바로 ‘과욕’, ‘분노’, ‘조급’이다. 과욕을 부릴수록 잃는 것이 많고, 분노할수록 일이 어려워지며, 조급할수록 실패하게 된다.
예컨대, 월드컵 축구 경기를 보다 보면 약팀이 강팀을 이기는 이변이 아주 가끔씩 일어난다. 아무리 약팀이어도 빈틈없는 수비로 강팀의 예봉을 완벽하게 막는다면, 승리는 어려워도 최소한 무승부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다가 강팀이 답답한 경기 내용에 분노하며 마음이 조급해지고 이기려고 무리한 공격을 하다가 수비를 소홀히 한 나머지 실수와 허점을 보여 역습 한 방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약팀의 승리’라는 이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도 잘해야 하지만 상대방의 역할(?)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는 역사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명나라 말기 요동 지역을 지키던 웅정필(熊廷弼) 장군은 위세와 사기가 높아가는 후금의 누르하치 군과 쇠퇴일로에 있던 명나라 군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토대로 방어체계를 완벽하게 준비하여 상당 기간 후금의 공세를 잘 저지해냈다. 하지만 싸우지 않는다는 내부 공격으로 웅정필이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현황 파악에 소홀히 하고 큰 공에 눈이 어두웠던 후임 장군들은 과욕과 조급으로 빈틈을 보이다 후금에 패퇴하였고 결국 명나라는 멸망의 길로 나아가게 되었다.
한편, 손자병법은 백전백승보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더 높게 평가한다. 전쟁에서 이기더라도 그 과정에서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생사, 막대한 물적 비용, 상당한 시간과 기회비용, 국가의 흥망성쇠가 걸린 중대사이므로, 경외심을 갖고 신중하게 지피지기에 임하여야 한다. 손자병법의 첫 편이 ‘계(計)’ 편인 것도 그 이유이다. 냉철한 지피지기로 거란군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적장과의 담판을 통해 전쟁 없이 목표를 이루었던 고려 시대 서희 장군이야말로 손자병법이 추구하는 가장 모범적인 사례이다.
오세용 부장판사(인천지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