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6일 자 특허법원 이형근 고법판사의 <재판의 실패, 어떻게 할 것인가> 법률신문 기고에 나타난 법원의 형사사건 처리 실태를 보면 1심 합의사건이 접수 기준 2017년 1만9587건에서 2021년 1만8769건으로 줄었으나 미제는 2017년 8993건에서 1만2630건으로 약 4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년 초과 사건도 398건에서 735건으로 약 80% 급증했다. 처리기간도 2017년 구속사건 118.9일, 불구속사건 168일에서 2021년 구속사건 138.4일, 불구속 사건 217일로 대폭 길어졌다. 접수가 줄었는데도 처리기간은 길어졌고 악성미제도 절대건수가 늘면서 그 비중도 높아졌다. 형사재판의 실패이자 사법행정의 실패가 아닐 수 없다.
문제가 발생하면 현상조사를 통해 근본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추진하는 것이 순서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도 효과적이고 적어도 80퍼센트 이상의 비중으로 실태파악에 집중해야 한다. 파고 파고 또 파서 근본원인을 확인해야만 형사재판 실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과연 법원행정처는 형사재판 미제의 급증과 사건처리 지연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가. 사법정책연구원은 2022년 1월 발표한 <법관 업무 분담 및 그 영향요인에 관한 연구>에서 법원 사건의 적정 처리를 위해 판사 680명~980명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작년 12월에는 2023년부터 5년간 판사 370명을 증원하는 판사정원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형사재판 지연의 근본원인이 판사의 부족 때문인지 의문이다. 판사 정원이 늘어나면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실효적으로 보장할 수 있고 법원의 인권보호 및 후견적 역할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판사 증원은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판사 증원에 따라 법정과 사무공간, 직원도 연쇄적으로 함께 늘어나야 하는데 한정된 사법자원으로 법원을 무한정 증축할 수도 없고 부지 확보조차 쉽지 않다. 무엇보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그렇게 해서라도 형사재판이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진다는 보장만 있다면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겠지만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방대한 금융경제범죄, 기업범죄 사건의 급증, 검사작성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제한으로 예상되는‘형사법정의 검사실화’등 재판환경 변화를 고려할 때 형사재판의 장기화는 피할 수 없다.
형사재판의 적체는 모든 국가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유럽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2년 유럽평의회에 ‘효과적 사법을 위한 유럽위원회(CEPEJ)’를 설립하고 ‘사법의 질’ 제고를 위한 다양한 정책과제를 논의해 오고 있다. 한정된 사법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법경제학적 관점을 바탕으로 각국의 사법시스템을 진단 평가하고 개선방안을 모색한다. ‘공판중심주의’라는 출처 불명의 잘못된 도그마에 빠져있는 우리와 달리 유럽은 1990년대부터 ‘정식재판 할 가치’가 있는 복잡하고 어려운 사건에 한해 공판중심주의 방식으로 재판하고 나머지 경미하거나 일반적인 사건, 자백하고 이미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사건은 신속간이절차로 처리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프랑스도 1990년대부터 운전면허정지, 피해배상 등 일정한 조건이행을 전제로 판사의 승인을 받아 법원에 기소하지 않는 부담승인조건부 기소유예(composition pénale)와 다양한 대체적 소추절차(procédure alternative), 정액벌금제(amamde forfaitaire) 등을 신설해 시행해 왔고, 2004년에는 ‘미리 유죄를 인정한 경우의 소추절차(C.R.P.C)’라는 이름으로 미국식 플리바게닝을 전면 도입했다. 입법 당시 법조계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으나 법무부와 의회는 ‘막힌 하수구’를 뚫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설득해 관철시켰다. 자백하고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사건에 공판중심주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판사의 ‘승인절차’와 ‘충분한 방어권 보장’의 조건만 마련되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도 담보되면서 법원의 업무도 획기적으로 경감할 수 있다. 2021년 프랑스 법무부의 형사재판 통계를 보면 58만7111건의 기소사건 중 10만1276건(17.2%)을 ‘미리 유죄를 인정한 경우의 소추절차’로 처리했다. 검찰도 기소가능 사건 125만4880건 중 40만7411건(32.5%)을 대체적 소추절차로, 6만7041건(5.3%)을 부담승인조건부 기소유예로 처리했다. 형사재판의 적체와 지연 처리는 피고인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효과적 집행에 지장을 초래하고 범죄피해자에 대한 신속구제를 어렵게 하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우리 형사재판의 막힌 하수구는 어떻게 뚫어야 하나.
김종민 변호사(전 광주지검 순천지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