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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편집인 칼럼
[차병직 편집인 칼럼] 순진한 노력과 무심한 능력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2023-03-02 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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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만 년 걸리는 계산을 단 며칠 만에 해낼 수 있다”며 현대 컴퓨터의 연산 능력을 표현하는 예를 본다. 엄청난 것 같지만, 컴퓨터의 능력을 나타내는 데는 한참 못 미친다. 1991년경 일본의 물리학자 요네자와 후미코는 다치바나 다카시와 대담하면서 ‘출장판매원 문제’를 끄집어냈다. 외판원이 25개 집을 방문하는데, 어떤 순서로 다니면 동선이 가장 짧은가라는 질문이었다. 계산은 간단하다. 25개 집을 차례로 방문하는 경우의 수에 따라 덧셈만 하면 된다. 집과 집 사이의 거리는 이미 측정되어 있는 상태를 전제로, 1초에 100만 회의 연산이 가능한 컴퓨터를 사용했을 때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쯤 될까?

요네자와가 알려준 정답은 약 98억 년이었다. 대담집을 읽다가 놀라기는커녕 인쇄가 잘못된 줄 알았다. 그러나 이어지는 최적화이론 설명에 98억 년이란 수치는 거듭되었다. 그날 밤 전자계산기로 확인에 들어갔다. 25개 집을 한 번 도는 경우 집 사이의 거리를 24회 더해야 하니, 모두 필요한 덧셈의 횟수는 25!×24회였다. 그 다음부터는 나누기만 하면 됐는데, 지운 동그라미 수를 바를 정자로 표시해 가며 대략의 계산을 마치고는 비로소 경악했다.

2016년 봄, 광화문 사무실 창 너머로 보이는 호텔에서는 세기의 대결이 펼쳐졌다. 프로기사 이세돌의 상대는 알파고였다. 알파고의 승리보다 이세돌의 행운의 한 판이 인류의 유일한 승리로역사를 기록한 5번기였다. 당시 알파고의 기능을 연산 능력으로 환산하면 대략 1초에 1433조 회, 98억 년을 7년으로 단축할 수 있었다.

3년 전의 보도에 따르면 슈퍼컴퓨터계에서 일본의 후가쿠가 1위를 차지했는데, 초당 연산 능력은 무려 41경5530조 회였다. 계산이 끝날 때까지 출장판매원은 8일 하고 반나절만 기다리면 됐다. 슈퍼컴퓨터는 보통 1경 회 이상의 연산 능력을 자랑하는데, 최근 미국에서 개발한 프런티어는 110경 회를 넘어섰다. 현실적 시간이 아니었던 98억 년은 3일 남짓으로 줄어들었다. 이제는 연산 능력을 나타내는 숫자가 초현실적이다.

엄청난 양의 일에 시달리고 있는 법률가들은
AI가 던진 한 수를 놓고 의미를 해석하느라
머리를 짜내는 검토실의 천재 기사들과 유사하다.


능력 순위별로 500대를 최고급 슈퍼컴퓨터로 친다면, 그 중 중국이 3분의 1을 보유하며 나머지는 대부분 미국과 일본의 것이다. 코로나 전만 하더라도 한국은 자체 개발한 것은 한 대도 없이 사 들여 놓은 3대가 전부였다. 지금은 8대로 늘어 세계 8위라고 자랑한다.

컴퓨터의 능력 신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슈퍼컴퓨터는 그 자체가 작은 공장 만하다. 냉각에 엄청난 전기가 필요해서 컴퓨터 한 대에 웬만한 발전소 하나가 붙어야 할 정도다. 종전까지 500위 이내 슈퍼컴퓨터의 절반을 보유했던 중국의 딜레마도 전기였다. 냉각이 필요 없는 양자컴퓨터 개발에 일찌감치 일본과 미국이 앞서 경쟁하고 있다. 성공하면 98억 년은 초를 나노 단위로 나누어 들어가야 할 지경이다.

우리 주변의 환경은 이렇다. 그것도 환경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여기서 ‘우리’를 우리의 법조 현실로 치환해 보자. 시군법원까지 포함해 전국의 법원 수는 200개 조금 넘는다. 하급심 기준으로 총망라한 한 해 사건은 수백만 건이다. 대법원에만 연간 4만 건 이상이 몰리고, 재판은 지연된다고 아우성이다. 뉴스에 보도되는 형사 사건은 기록만 읽는 데 며칠이 걸릴지 알 수 없다. 대부분의 결론은 판례를 좇는다.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도 판례를 찾는다. 로스쿨 학생은 판례를 외우고, 강단의 교수는 최신 판례를 놓치지 않았는지 불안하다. 그나마 판례 찾기는 컴퓨터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엄청난 양의 일에 시달리고 있는 법률가들은 AI가 던진 한 수를 놓고 의미를 해석하느라 머리를 짜내는 검토실의 천재 기사들과 유사하다. 미래의 법학 교육과 수사와 재판이 어떻게 전개될지, 챗GPT의 소리가 귓전에 맴도는 가운데 SF 영화 스크린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생각에 잠긴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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