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건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경찰은 보호자에게 아동학대범죄의 혐의까지는 인정하기 어렵지만, 보호자가 아이를 보호할 의사와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숙고 끝에 아이를 「소년법」상 우범소년으로 송치하였다. 아이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가출을 시도하는 등 비행의 전조가 보이자, 현재의 보호자 아래 둔다면 아이가 더 큰 위험에 놓여질 수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아이가 우범소년으로 가정법원에 송치됨과 동시에 아동학대 피해아동으로서의 보호 절차도 종결되었다. 아이에게 가정법원의 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해준 사람도 없었고, 아이에 대한 보호의 공백은 그대로였다. 친구들과 가출을 한 두 차례 더 감행한 아이는 굶주림을 참지 못해 무인 상점에서 2만원 정도의 식료품을 훔치다가 범죄소년으로서의 비행이 추가되었다. 피해아동으로서 ‘보호’를 받았던 아이가 보호소년으로서 ‘처분’을 받게 된 경위다.
같은 수위의 범죄를 범한 아이들 대부분은 가정법원까지 오지도 않고 오더라도 보호자의 품으로 돌아가서 개선의 기회를 부여받지만, 이 아이는 보호자의 보호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불리한 처분이 예상되었다. 아이에게 제대로 된 ‘보호자’를 찾아주고, 그 ‘보호자’의 보호 아래 건강한 성장과 교육의 기회를 얻도록 하여야 했다. 이에 지자체에 피해아동으로서의 지원과 개입을 문의하였지만, 놀랍게도 “지역사회에서 감당할 수 없다”라는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왔다. 같은 아이에 대한 「소년법」과 「아동복지법」의 단절적 적용이 만들어낸 가혹한 결론이었다. 법률가로서 또 아이의 보조인으로서 두 법률 간의 연결고리를 찾아 아이에게 가장 이득이 되는 의견을 재판부에 전달하여야 했다.
보조인으로서 재판부에 2가지 의견을 제안하였다. 첫 번째로, 「소년법」 제32조 제1항 제1호의 보호자 등에 감호위탁 처분을 내리되, 보호자를 대신할 수 있는 자로서 가정법원의 “위탁보호위원”을 지정하여 주는 방안과, 두 번째로,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제47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피해아동보호명령을 판사의 직권으로 개시하여 아이를 아동복지시설이나 연고자 등에게 보호위탁 하는 결정을 내리는 방안이었다. 재판부는 보조인의 의견을 참고하여 위 두 가지 제안 중의 하나로 아이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였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명제가 무색하게 법정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법제도의 단절과 사각지대에 놓여진 경우가 많다. ‘아동’과 ‘소년’은 다르다며 보호 대신 처벌을 앞세우는 상황을 아이 홀로 오롯이 감당하여야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처럼 소년과 아동의 경계에 놓여진 아이들을 만나게 될 때, 법률가로서 우리들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이의 보호를 위하여 마련된 여러 법률 간의 유기적인 연계 근거를 찾고, 법률전문가로서 형사사법기관과 지역사회에 아이의 최상의 이익을 위한 의견을 제안해 보는 것은 어떨까?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소년법」의 목적과 ‘아동’의 복지 보장이라는 「아동복지법」의 목적이 완전히 방향을 달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접근의 방식은 다르지만 두 법률 모두 결국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우리 사회가 어떻게 개입할 것인가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현행 법률을 ‘소년과 아동’ 모두를 위한 법으로 운용하기 위하여 우리 법률가들의 역할을 다시 한번 고민해 볼 때이다.
신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율다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