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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놉티콘
‘시간 가성비가 정의’인 시대, 당신의 콘텐츠는 끝났다?
권석천 고문(법무법인 태평양)
2023-03-13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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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 본다는 드라마, OOO 있잖아요. 그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에 가입해 있지 않아서 유튜브 몰아보기로 봤는데… 좋던데요. 시간도 절약되고!”

얼마 전이었다. 지인의 얘기에 나도 유튜브에서 ‘OOO 몰아보기’를 검색했다. 1화부터 8화까지를 1시간 30분 남짓 분량으로 압축한 동영상이 튀어나왔다. 드라마 내용이 얼마나 제대로 전달될까, 반신반의하며 봤는데 줄거리부터 주요 장면까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왔다.

“이런 식이면 드라마를 정주행할 사람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시청 소감을 출판사 편집자에게 전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최근에 비슷한 문제를 다룬 책이 나왔어요. 아, 잠깐만요. 제목이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네요.”

일본 작가가 쓴 문제의 책은 MZ 세대의 시청 행태를 예리하게 파고든다. 영화를 1.5배속으로 보고, 대사가 없는 일상적 장면은 10초씩 건너뛰고, 1시간짜리 드라마를 10분 요약 영상으로 해치운다. 결말을 빨리 알고 싶어 마지막 회부터 보거나, 한 회를 통째로 생략하기도 한다.

이 현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일까?책이 내놓은 해답은 ‘OTT 등장과 함께 화제를 따라잡기 위해 봐야 할 영화나 드라마는 너무 많은데, 볼 수 있는 시간은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것도 ‘작품 감상’이 아니라 ‘콘텐츠 소비’로 받아들인다. 핵심 키워드는 ‘시간 가성비’. 시간이 그만큼 아깝고 소중하다는 뜻이다.

‘시간 가성비가 정의(正義)’인 상황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요즘 인기 드라마는 한 회가 끝날 때마다 줄거리를 요약해주는 기사가 뜨곤 한다. 유튜브엔 책부터 영화까지 모든 걸 알기 쉽게 소개해주는 ‘프로 요약러’들이 수십만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뿐인가. 건강 등 정보 관련 유튜브엔 핵심 내용이 몇 분 몇 초에 나오는지 알려주는 댓글이 붙곤 한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고
드라마도 몰아보기 시청
누가 기사, 판결문 읽을까


개탄만 한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영화→TV→비디오→DVD→인터넷→OTT로 이어져온 추세를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새로운 기능은 새로운 습관을 낳고, 그 습관은 생활을 바꾼다는 게 당신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의 교훈이다. 영화를 ‘감상’하고 ‘빨리 감기’를 하지 않는 이들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트렌드에 뒤떨어진 비즈니스는 폐허가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시대에 누가 아침 신문을 읽고, 누가 저녁 뉴스를 볼까? 기존의 기사 문체는 얼마나 유효할까? 지금 같은 기사 포맷으로 1.5배속에 길들여진 독자들을 유인할 수 있을까? 방송 리포트의 1분 30초 분량도 긴 것은 아닐까? 책의 지적처럼 ‘움직임이 적은 화면이나 단위 시간당 정보 제공량이 적은 콘텐츠를 지루하게 느끼는’ 이들에게 뉴스의 메시지가 살아서 전달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법률 분야 콘텐츠의 운명도 다르지 않다. ‘빨리 감기’ 시대에 300, 400페이지씩 되는 판결문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벽돌 같은 판결문을 대체 누가, 몇 페이지나 읽을까? 트럭으로 실어 날라야 한다는 방대한 수사기록과 변호사 의견서는 또 어떠한가? 판사들은 과연 그 모든 기록을 읽고 재판을 하고 있을까? 법률가들은 법정과 여론을 설득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모든 콘텐츠가 벼랑 앞에 섰다. “활자를 안 읽는다”는 푸념은 그나마 배부른 소리였다. 적응해 살아남을지, 도태돼 사라질지의 갈림길이다. 그 생존 전략이 챗GPT에게 묻는다고 나올 거 같진 않다. 결국 끊임없이 시도하고, 모색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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