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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병직 편집인 칼럼
[차병직 편집인 칼럼] 독단의 미덕과 기능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2023-03-13 0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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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견고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지방법원의 판사는 문신 시술을 한 타투이스트에게 의료법위반이 아니라며 무죄 선고를 했다(법률신문 2022년 12월 12일자 <권석천의 시놉티콘> 참조).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기존의 해석을 뒤집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오래됐지만, 억대 판돈의 내기 골프가 도박이 아니라는 선고도 있었다. 우연성이 아닌 기량이 승부를 지배한다는 이유로 도박죄를 부인한 도발적 해석은 판에 박힌 관점에 대한 도전이었으나, 판사의 다른 기행 등으로 의미가 희석되기도 했다.

 
2018년 초, 서울북부지법 판사는 군 복무 당시 동성끼리의 성행위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합의된 동성의 성행위까지 처벌하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군형법 규정은 위헌이라는 이유였다. 결과만 두고 보면 그럴 수도 있고, 어떤 면에서는 당연하다. 그러나 법률가의 눈으로 살피면 이상한 점이 드러난다. 위헌의 의심이 있을 때는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하급심 판사의 독자적인 헌법 판단은 가능한가?

 

해석이 아니라 아예 법률 규정 자체를 무시한 듯한 판결도 있다. 지난날 대표적 비전향 양심수 강용주에 대한 보안관찰법위반 사건의 선고는 앞의 군형법 사건 선고 바로 전날 서울중앙지법 법정에서 이루어졌다. 무죄라는 선언은 국가보안법 체제를 거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 속에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었다. 강용주의 혐의는 보안관찰법이 규정한 신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신고 의무는 2년마다 위원회가 결정하는 보안관찰처분 대상자에게 부과된다. 처분의 기준은 ‘재범의 위험성’ 유무다.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는 위원회의 판단에 불복할 수 있는 수단은 서울고등법원을 1심 전속 관할로 하는 취소소송뿐이다. 그런데 형사 사건을 담당한 지방법원의 판사는 과감하게 재범의 위험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예로 든 네 사건은 모두 1심 단독 관할이었는데, 상급심에서 단호하게 파기되기도 했지만 그대로 확정된 사건도 있다. 법적 안정성을 염려하는 보수적 시선의 법률가들은 결과에 놀라 단독판사가 아니라 독단판사라며 탄식했다. 몇 년 전 사법연수원과 사회법학회는 ‘튀는 판결’을 주제로 심포지움을 열어 걱정의 학술화를 시도한 적도 있다. 관심을 끄는 판결들은 실제로 법의 해석과 적용에서 논증주의를 애써 피해가며 결단주의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달리 보면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기본권 보장을 위해서는 굳이 헌법재판소를 거치지 않더라도 헌법합치적 해석을 대법원이 앞장서 권장한 것도 사실이다. 그 이면에는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최고 권한에 관한 갈등이 깔려 있다. 강용주 사건에서는 재범 위험성 판단이 당해 사건 구성요건 해석의 범위에 포함된다는, 고심 끝에 구성한 판사의 논리가 제시되어 있다.


논증이라는 과정이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과학의 세계에서도 귀납주의나 반증주의자가 제시한 설명에 부합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들이 존재한다.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탄생한 이론이 명백한 반증에도 불구하고 폐기되지 않은 채 유지되며 발전한 사례도 있다. 엄정한 비판만이 과학의 길인 양 주장했던 칼 포퍼조차 독단주의적 태도 역시 수행해야 할 긍정적 역할이 있다고 시인했다.


고전적 논리학이 모든 논리를 포괄하고 대표하지 못한다. 기초적 논리의 관철이 현실의 직관적 논리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면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때는 형식적 논리를 포기하고 직관을 받아들이는 것이 옳다는 법철학 이론도 있다. 재판이 아무리 논증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외친들, 법적 논증이란 결국 체계화를 위한 것이다.

 
사법의 체계에도 우리가 예상하지 못하는 새 질서가 진입하고 있다. 독단처럼 보이는 단독 행위가 낡은 논리와 탄식을 서서히 제거해 나아가고 있는 중인지 모른다.


차병직 변호사 (법무법인 한결·법률신문 공동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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