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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신(新)과 함께
[법의 신(新)과 함께] 변호사의 도구들
김화령 변호사 (서울회)
2023-03-1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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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결혼하고 신혼집으로 짐을 하나씩 옮기던 때가 생각난다. 법조인이 아닌 배우자는 내 짐에 두껍고 무거운 법학 교과서들을 담은 박스가 여러 개 포함되어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내가 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독서대, 다양한 굵기와 질감의 펜들(기록시험용과 필기용을 나누어, 굵기와 질감 별로 구매했더니 검은 펜만 한 다스가 나왔다)을 보며 신기해했고, 골무와 구부러지는 자를 보고는 호기심에 눈을 반짝였다. 바느질도 못 하는 아내가 왜 골무를 여러 개 쟁이고 있는지, 왜 책은 독서대에 올려놓고 읽으며, 왜 꼭 밑줄은 구부러지는 자를 대고 긋는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게 법조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낯선, 때로는 신기한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누가 그랬던가. 변호사는 기록을 상대로 일하는 사람이라고. 또 문서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인지 문서를 취급하기 위해 여러 가지 특별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 같다. 기록을 빨리 넘기기 위해 엄지손가락에는 골무를(검지에도 착용하는 분들이 있던데, 나는 엄지에 착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깔끔하게 줄을 긋기 위해 구부러지는 자를 사용한다. 대립당사자들의 주장이 담긴 서면은 빨간색과 파란색의 띠지가 달린 소송용지에 구분하여 출력한다. 이렇게 구분해 두면, 보다 빠르게 찾을 수 있고, 소송의 흐름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쉽다. 선배 법조인들의 지혜가 담긴 편철방식이라 생각한다. 요새는 소송기록을 노트북이나 패드에서 열람하고, 기록도 전자기기를 통해 남기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아직까지 종이에 출력해서 읽는 방식을 선호한다. 옛날 사람이라 그런가. 종이로 읽어야 행간도 더 잘 읽히고, 메모하기도 더 편하다.

골무, 구부러지는 자, 다양한 굵기의 펜
문서로 일하는 변호사의 특별한 도구들
시간표 맞추기, 시나리오 그려보기 등 인지적 도구 생겨
삶에 스며든 도구들 돌아보니 흐뭇한 마음 들어


한편 이런 물리적 도구들 말고도, 일하다 보니 체득된 머릿속의 도구들도 있다. 먼저 타임라인표.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각의 사건이 ‘언제’ 일어났는지 순서를 맞춘다. 때로 의뢰인들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설명하기 때문에 개별 사건의 선후를 바꾸어 말하거나, 사건이 일어난 시기를 특정해서 말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일해온 시간이 쌓이니 나도 모르게 각 몇 년도 몇 월에 일어난 일인지 및 시간적 선후관계를 재차 확인하고, 머릿속에 표의 형식으로 입력하는 버릇이 생겼다. 그 후 체득한 것은 ‘모순 발언 감지기’다. 일례로 아는 동생이 “친한 친구가 소개해 줘서 만나본 남자인데, 돈을 빌려 가서 안 갚고 있다. 내용증명이라도 보내려고 보니 인적 사항을 알 수 없다”는 말을 하면 “주선한 친구도 정확한 인적 사항을 모른대? 그래도 학교든 직장이든 뭔가 인적 사항을 확인할 실마리가 있을 텐데?”하고 되묻게 된다. 문제는 일할 때만 사용해야 하는 이 도구가 일상생활을 할 때도 자동으로 실행된다는 것이다. 가끔 친교 목적의 대화를 하다가, 사실확인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흠칫할 때가 있다.

요새 발달했다고 느끼는 기능은 바로 ‘말에 대한 기억력’이다. 화자가 어떤 표현을 사용했는지, 또 어떤 맥락에서 사용했는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오래 기억하게 되었다. ‘상대방의 저 표현은 서면에 꼭 반영해야지’ 등의 생각을 하다 보면 더 오래, 더 또렷하게 기억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 변호사 일을 하면서 정말 자주, 오랫동안 쓰는 도구는 바로 ‘시나리오별 시뮬레이션’이다. A라는 의사결정을 했을 때 최선의 결과와 최악의 결과는 무엇인지,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케이스 별로 나누어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능성이 낮은 리스크까지 일단은 떠올려보고 리스크의 확률과 크기를 가늠해 보는 기능이 탑재되었다.

그동안 공부하면서, 일하면서 인이 박이게 사용한 도구들을 꼽아보니 마음이 어딘지 흐뭇하다. 일이 어느새 내 삶에 이렇게 스며들어 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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