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검찰청 김현채 검사(60·사법연수원 23기)는 올해로 물경 30년째 현직을 지키고 있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정년 63세를 지키고 퇴직하는 검사는 매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뭔가 비정상적으로 보인다. 대통령과는 연수원 동기인 김 검사는 이미 후배들이 장관과 총장으로 기용되는 걸 지켜보았다. 하지만 그는 한결같이 검사실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약 력 ]
그는 2003년 법무부 보호과 검사로 처음 범법 청소년들과 인연을 맺은 이후 2010년 다시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범죄예방기획 수석과장을 맡아 전국 소년원과 보호관찰소 등을 관장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이때 청소년 계도 및 복지 정책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그러던 2014년 겨울, 우직하고 성실하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 있던 김 검사에게 뜻하지 않은 청천벽력 같은 시련이 닥친다.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검찰 내 신앙을 공유하던 검찰신우회 회장으로 모임에서 기도를 마치고 내려오던 중 뇌출혈을 일으킨 것이다.
그 일로 뇌수술을 받은 그는 2년 가까이 병가를 내고 치료 및 재활을 하는 데 전념해야 했다. 어느 정도 일상 생활에 복귀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이 회복될 즈음 그에게 또 한 차례의 고난이 닥치는데, 운전 중 자유롭지 못한 지체 때문에 기기 조작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교통사고를 피하지 못했고 또 한 차례의 뇌수술을 받아야 했던 것.
잇따른 불운의 결과 그는 오른쪽 손과 발에 5급에 해당하는 강직 장애를 안게 되었고 언어 사용에도 제약이 따라왔다. 그와의 인터뷰 자리에는 원활한 의사소통을 돕기 위해 청소년행복재단 윤용범 사무총장이 배석했다.
김현채 검사는 불편한 몸이지만 지팡이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선 채 환한 미소로 인터뷰어 일행을 맞이하면서 미리 준비해둔 차를 권했다. 사람 수대로 컵 받침 위에 컵을 놓고 그 위에 티백 하나씩을 올려놓은 것. 그것에서부터 타인에 대한 남다른 배려심이 엿보였다.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시절 부모님이 큰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매우 어려운 형편 속에서 자랐다고 했다. 특히 어머님의 고생이 너무나 컸다는 것이다.
“어머님 고생이 말도 못 했어요. 집안은 어려웠지만 내 딴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어머님을 돕고 싶었어요. 결국 집에서 가까운 연세대 법학과에 들어갔는데, 법대도 어머님이 권유하신 것이었어요.”
집안에선 등대이고 어머니에겐 유일한 희망이었을 그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수원지검에 부임하며 검사로서의 첫 임무를 시작한다. 그러곤 대전지검 서산지청, 서울지검 서부지청, 인천지검 부천지청 등으로 부임지를 옮겨 다니면서 탄탄한 경력을 쌓는다. 그러다가 상술한 것처럼 법무부 보호과장으로 일할 때, 당시 그곳 소년과에서 사무관으로 일하고 있던 법무공무원 윤용범 현 청소년행복재단 사무총장을 운명적으로 만난다.
배석한 윤 총장의 말이다.
“그때부터 늘 하시던 말씀이 나중에 다른 자리로 가더라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소년원을 출원한 청소년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다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다가 2019년 청소년행복재단이 만들어지고서 연락이 닿았는데, 그때 장애를 안고 계시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예전의 약속을 기억하고 있고 이제는 정말 그것을 지키고 싶다고요.”
그렇게 드라마처럼 시작된 미션이 매달 소년원을 출원한 청소년 두 명씩을 고검 옆 중앙지검 내 식당에 ‘김현채 검사 손님’ 자격으로 초대해 식사를 같이 하고 자비로 구입한 책을 선물하는 일이었다. 차분한 준비를 거쳐 작년 6월부터 시작한 이 의미있는 행사는 벌써 9회가 진행됐고, 수백 권이 넘는 책이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어졌다. 초대 대상 아이들을 정하는 것은 청소년행복재단 윤 사무총장이 맡는데,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고 했다. 김 검사가 구입해서 선물로 주는 책들은 시집 같은 문학서도 있지만 경제 상식을 다루는 책도 있다는데, 그 이유를 김 검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부모나 가족 같은 배경이 없는 아이들일수록 경제적인 독립이 중요하잖아요. 경제 관념과 돈의 가치를 아는 것도 중요하고요. 그래서 경제서를 선물용 도서 리스트에 넣었어요.”
김 검사는 아이들과 식사를 하면서 주로 아이들 말을 경청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해주는 식으로, 기성세대로서 당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는 아이들이 조언을 요청하면 현실을 너무 좁게만 보지 말고 넓게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을 꼭 해준단다. 꿈을 잃지만 않으면 어려움을 이길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물론 이것은 김 검사가 자신의 경험을 투사해서 체득한 지혜일 터였다.
윤용범 사무총장에겐 동행이 한 사람 있었는데, 김현채 검사의 식사초대를 받았던 소년원 출신 젊은 친구로 이름은 문○○이라고 했다. 식사초대 이후 인연이 돼 두세 번 더 만났다고 하는데, 그 사이 정이 들었다면서 김 검사를 만나러 간다는 말을 듣고 윤 사무총장을 따라나섰다는 것이다. 이 어린 친구는 김 검사와 식사를 할 때 일부러 손놀림이 불편한 김 검사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수저질을 하며 대화를 나눴다고 했다. 아, 어린 친구에게 이런 사려 깊음이 있다니. 직접 김현채 검사의 멘토링을 경험한 그에게 물었다. 김 검사와 함께했던 시간의 의미가 어땠는지.
“검사님이 선물해주신 책들이 의외로 정말 다양했어요. 건강 관리에 대한 책도 있고, 법 지식이나 경제 분야를 다루는 책도 있는데, 그 책들을 읽으면서 실제 생활에 필요한 지식이 쌓이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 뵈었을 때는 장애 때문에 검사님이 좀 안쓰럽게 보였는데, 뵈면 뵐수록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몸은 불편하시지만 마음은 누구보다도 건강하신 거잖아요. 저에게 어떤 터닝포인트가 된 느낌이었어요.”
그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김현채 검사는 60의 나이에도 소년처럼 수줍게 웃었다. 그 웃음은 해피바이러스처럼 인터뷰어에게도, 배석자들에게도 빠르게 감염되었다.
비록 조촐하지만 그 어떤 과시적인 봉사프로젝트보다도 ‘힘이 센’ 것처럼 보이는 이 행사를 옆에서 돕고 있는 윤용범 사무총장에게 물었다. 힘이 되어줄 멘토가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는데,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것도 장애를 가진 이가 멘토링을 할 때 어떤 특별한 의미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를.
“청소년들에게 검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자신들에게 벌을 주는 무섭고 두려운 존재잖아요.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어려움과 고통과 늘 맞서야 하는 존재이고요.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는 김현채 검사님은 그런 점에서 청소년들에게 각별한 영감과 자극을 줄 수 있는 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검사에 대한 고정관념도 깰 수 있고 또 자신의 장애를 감수하면서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바가 크다고 생각해요.”
법무부 범죄예방기획과장 때부터
청소년 계도·복지 정책에 관심
뇌출혈로 강직 장애 안게 됐지만
소년원 출원 청소년 위한 봉사
매달 2명씩 검찰청 식당으로 초대
경청하고 책 선물하며 격려
김현채 검사는 자신이 겪고 있는 장애와 고통의 현실에 골몰하거나 집중하는 대신 한때 불우한 시기를 겪은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들보로 성장하는 것을 돕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국가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청소년행복재단 이사 등 실무진에는 참여하지 못하지만 퇴직한 이후에는 재단 일을 보다 적극적으로 도울 생각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 검사는 청소년행복재단의 가장 열성적인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청소년행복재단을 소개하고 후원을 부탁한다는 것이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이동권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며 시위를 하면서 우리 사회 장애인의 권익이 이슈가 되었는데, 김 검사에게 장애인으로서 서울고등검찰청에서 현직으로 근무하는 데 실제적인 불편은 없는지 물었다. 이때도 그는 타자를 먼저 상상하고 배려했다.
“이곳에도 나처럼 장애를 가진 직원들이 또 있을 거예요. 고검에서는 장애인에게 여러 편의를 제공하고 있고 더욱이 나는 고참 검사이기 때문에 그래도 배려도 받고 불편함이 덜할 수 있는데요. 다른 평직원 같은 분들은 말 못할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잖아요. 그런 생각에서 조금이라도 장애인들이 불편한 게 없는지 돌아보는 태도가 필요해요.”
교통사고를 당한 이후에는 직접 운전하는 게 불가능해서 출근할 때에는 항상 이용하는 택시를 사용하고 퇴근할 때는 그때그때 편의대로 택시를 불러서 이용한다는 그는 시종일관 평온한 미소를 띠었다. 문득 옆에 놓인 지팡이가 외로워 보였다.
청소년들의 자활에 유독 관심이 많은 이니까 자녀들 교육에 대해선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김 검사는 장성한 딸이 둘 있다면서 아이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신앙이라는 가풍 아래에서 늘 믿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쪽을 택했지 특별히 간섭이나 참견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두 딸은 지금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말이란 것은 전해지고 옮겨지는 과정에서 원형이 훼손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물질 역시 손을 타면서 그 가치와 의미가 훼절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김현채 검사는 자녀들과 우리 사회에 외롭고 의지할 데 없는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실천’을 유산으로 남기는 중이다. 말이나 물질과는 달리 실천적 삶은 흐르는 물처럼 고이지 않아서 탁해지거나 오염될 수 없다. 김 검사의 실천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의 귀감이 되어야 할 이유다.
참고로 청소년행복재단은 전액 후원금으로만 운영되고 있다는데, 정기 후원을 하고 싶으신 분은 02-6284-0061로 신청하시면 된다.
김도언 시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