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을 적게 먹는 것이 건강에 좋을까? 아니면 탄수화물을 적게 먹는 것이 좋을까? 필요한 열량을 채우려면 두 영양소 모두 줄일 수는 없다. 지방을 적게 먹으면 탄수화물을 늘려야 하고, 탄수화물을 줄이면 지방이나 단백질을 많이 먹게 된다. 그런데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당뇨에 좋지 않다고 하고 지방을 많이 먹으면 심혈관에 좋지 않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까.
LFD는 지방을 당으로 대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식품업계는 LFD를 돈 버는 기회로 활용했다. 지방 대신 당을 많이 첨가한 가공식품을 시장에 쏟아내고 건강한 식품이라고 광고했다. AHA는 당이 많은 저지방 시리얼 등에 ‘심장에 건강한’이라는 라벨을 붙이도록 승인했다. 소비자들은 저지방이면 심장뿐 아니라 건강 전반에 좋은 것이라고 믿었다. 1990년대까지 소비자들은 무지방이면 저지방보다 더 좋다고 믿고 열량이 많아도 마음 놓고 먹는 풍조(SnackWell effect)가 있었다.
막상 기대했던 LFD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197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미국의 심장병 사망률은 약 40% 감소했지만 심장병 유병률은 비슷했다. 심장병 사망률 감소는 수술 등 의료 발달에 기인한 것이었다(1998 논문). LFD는 심장병 예방 효과가 없었다(2006 논문). 1980년부터 2018년까지 미국의 비만과 당뇨는 약 3배로 증가했다. LFD 권장에도 불구하고 비만이 만연한 현상을 ‘아메리칸 패러독스’라고 한다.
LFD가 건강에 좋다고 이데올로기처럼 믿어 왔지만 과학적 증거는 약했다. 지방이라고 해도 불포화지방은 심장병 위험을 줄이고 대사에 좋으며, 탄수화물 중 정제된 곡물과 첨가당은 심장병과 당뇨 위험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든 지방과 당은 평등하게 창조되지 않았다.” 지방과 탄수화물의 종류와 질을 따지지 않고서는 건강을 논할 수 없게 되었다.
LFD에 대한 반작용으로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저탄고지 열풍이 불었다. 저지방, 무지방 식품은 물론 빵까지 판매가 급감했다. 탄수화물을 배제하고 육류나 고지방 음식은 제한하지 않는 앳킨스 식단(‘황제 다이어트’)이 인기를 끌었다. 탄수화물을 제한하면 단기적으로는 체수분 배출로 체중 감소 효과가 LFD보다 크다. AHA, 미국당뇨협회 등 전문가들은 이 식단이 질소 노폐물 때문에 신장에 무리를 주고 장기적으로 고지혈증, 동맥경화증 등 심혈관질환 위험이 커진다고 공격했다. 앳킨스가 세운 회사는 2005년 파산했다.
현재의 과학적 컨센서스는 지방 등 특정 영양소에 초점을 맞춘 식단보다 지중해식단과 같이 균형 잡힌 식단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섬유질이 많은 채소와 과일을 풍부하게 먹고, 붉은 고기를 줄이고 생선을 더 먹고, 올리브유처럼 좋은 기름을 선호하고, 정제된 당과 가공음식을 피하고, 무엇보다 자연음식 위주로 먹는 것이 답이다.
고승덕 변호사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