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관을 지낸 올리버 웬들 홈스(Oliver Wendell Holmes)의 유명한 일화 하나. 어느 법학도가 홈스를 보고 “정의를 행하여 주세요, 대법관님(Do justice, Justice)!”이라고 소리치자 그는 약간 무뚝뚝한 어조로 답했다. “여보게, 그건 내 일이 아닐세!” 아마도 이 법학도는 적어도 두 가지 믿음을 가졌으리라. 법이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홈스 대법관이야말로 흔들림 없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 그런 기대를 큰 소리로 전했을 뿐인데, 정작 돌아온 대답은 그를 망연하게 하였을지 모른다. 정의를 행하는 일이 대법관 일이 아니라면 누구 일이란 말인가. 대법관은 무슨 일을 행해야 하는가. 홈스 대법관은 어떤 연유로 이렇게 말했는가. 일화는 이에 관해 어떤 말도 잇지 않고 있다.
‘법의 지배(rule of law).’ 같은 말이라도 이 말을 쓰는 이유는 서로 다른 경우가 많은 듯하다. 법철학의 시작이자 끝인, 법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지만, 최소한 법의 지배에서 말하는 법은 통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법의 지배, 즉 법치는 통치가 아니라 조정을 향한다고 믿는다.
“인류 역사에서 점진적이면서도 합의에 기반을 둔, 갈등 없는 발전이란 없었다.” 토마 피케티의 단언이다. 지위, 처지,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갈등은 때로는 전쟁이나 폭력에 의해, 때로는 막강한 지배자의 절대 권력에 의해 다스려지고 억눌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파괴적이고 무엇보다 비인간적이었다. 평화롭고 질서 있는 갈등 해결 방법이 필요했다. 그래서 마침내 창안한 것이 법의 지배 아닌가.
사람이 지배하던 시대에도 법은 있었다. 그러나 그때의 법은 ‘사람이’ 지배하는 데 필요한 법이었다. 사람이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를 한 것이다. 하지만 ‘법의’ 지배는 ‘법이’ 지배하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 의해, ‘절대 권력자의, 절대 권력자에 의한, 절대 권력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법이 지배하는 것이다. ‘절대 권력자’를 ‘절대 정의’로, ‘국민’을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공동체’로 치환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조정이 아니라 통치를 염두에 두고 법의 지배, 즉 법치주의를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퇴행적 생각 아닐까?
‘처음부터 좋은’ 법이 있기보다는 ‘질서 있는 갈등 해결에 좋을 때 비로소 좋은’ 법 아닐까? 정의도 그렇지 않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를 비롯해 대부분의 정의론은 선험적으로 올바른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사고를 앞세우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연역적으로 선언된 하나의 정의가 법의 이름으로 지배하는 양자택일의 방식은 진정한 법의 지배와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또 다른 의미에서 폭력적인 방식이 아닐까? 그렇다면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정의의 관념 대신, 진리의 상대성을 받아들여 갈등 조정에 더욱 적합한 해결방안을 절차적으로 논증해 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귀납적으로 매듭지어진 결과를 두고 정의라고 말할 수 있다면, 정의는 결코 하나가 아니고 무수히 다른 결과로 나타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홈스 대법관 일화로 되돌아 가보자.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서쪽 벽면(청사 정면)에는 “법 앞에 평등한 정의(EQUAL JUSTICE UNDER LAW)”, 동쪽 벽면에는 “자유의 수호자 정의(JUSTICE THE GUARDIAN OF LIBERTY)”라는 문구가 새겨지고, 북쪽에는 “정의의 사색(Contemplation Of Justice)” 조각상도 있다. 모두 ‘정의’라는 단어가 들어있다. 우리 대법원 청사 정문의 대리석 벽면에도 “자유, 평등, 정의”라는 세 글자가 음각되어 있다. 최고법원을 정의와 따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홈스 대법관은 “정의를 행하는 것은 내 일이 아닐세!”라고 말했다.
홈스 대법관을 향해 법학도가 외친 정의와 홈스 대법관이 구현하려는 정의는 서로 다른 것이었으리라. 정의를 행하지 않는다고 한 홈스 대법관의 역설 화법은, 법관은 정의를 연역적으로 선언하는 일이 아니라 시대의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당사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그의 법철학 사상에 기인한 것으로 짐작한다. 독일의 법관은 모든 재판서 첫머리에 “국민의 이름으로(Im Namen des Volkes)” 재판한다고 쓴다. 함부로 정의의 이름으로 재판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이 두 가지 예만으로도 정의와 법치에 관해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김지형 대표변호사 (법무법인 지평·전 대법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