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동물인 ‘해치(해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법과 정의를 상징한다. 중국 한나라 때 문헌인 이물지(異物志)에서는 해치에 대해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들이받고, 사람들이 서로 따지는 것을 들으면 옳지 못한 사람을 문다.’라고 묘사되어 있다. 현재 쓰고 있는 법(法)이라는 한자도 원래 해치를 의미하는 ‘치(廌)’자가 포함된 형태의 ‘법(灋)’이라는 글자였다고 한다. 물(氵)에서 올라온 해치(廌)가 시비를 가리고 심판하여 의롭지 못한 존재를 뿔로 제거하여 가다(去)라는 의미가 합쳐진 것이라는 한자 풀이도 있다.
이러한 법(法)의 어원에 비추어, 법의 목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하는 것에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법적 분쟁이 발생하여 소송기록화된 사건을 접하게 되면,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옳고 그름의 이분법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닌 사건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민사사건에서 채무자는 약자로서 선이고 채권자가 강자로서 악이라는 구도로 사건을 단순화하여 바라볼 수는 없고, 실상이 그렇지도 않다. 채권채무의 법률관계에 따라 상식적인 요구를 한 채권자의 권리행사에 대해 교묘하게 채무이행을 회피하거나 추가적인 속임수까지 써서 금전적인 부분을 넘어 정신적인 고통까지 야기한 채무자가 있는 사건도 접하게 된다. 파산사건에서 특별히 잘못한 것 없는 채권자에게 양보를 강제하면서 채무자를 면책하는 것이, ‘계약은 준수되어야 한다’는 법리와 균형을 이루며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 경우를 단일한 기준으로만 정하기도 어렵다. 비교적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가 선명해 보일 수 있는 형사사건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범죄구성요건을 충족하는 행위는 그릇된 행위겠지만 정당방위 등으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사안도 있다. 위법성이 조각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피해자로부터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가혹한 폭력에 시달려오다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 사건에서 누가 진정한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를 일도양단할 수 있을까.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상상 속의 동물인 해치가 현실에 나타나더라도, 다양한 가치와 복잡한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오늘날 법적 분쟁에서 과연 누구를 들이받고 물어야 할지를 선뜻 선택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한다. 국민의 시각에서는 해치의 화신(化身)으로서 판사가 일도양단으로 속시원하게 판결을 해 주기를 바라지만, 법리는 물론 소송기록에 나타난 제반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해야 하는 판사들의 고민은 깊기만 하다.
정문경 고법판사(서울고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