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는 법원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정이다. 원고는 피고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품고 법원에 소장을 낸다. 서로의 주장을 논박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노여움은 점점 커진다. 판사 앞에 왔을 때, 당사자들은 이미 ‘화’로 충만해 있다.
[각주1] 2009년 7월 14일 미연방대법관 인사청문회 당시의 발언.
“만족해하는 판사나 성내는 판사는 조심하라!”(리처드 포스너)[2]
[각주2] R. Posner, How Judges Think, Harvard University Press(2008), 110.
그러나 노여움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지나쳐도 안 되겠지만 모자라는 것 역시 적절한 것은 아니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일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고 마땅한 방식으로 화를 낼 줄도, 마땅한 때에 마땅한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낼 줄도 모르는 사람 역시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3]
[각주3] 아리스토텔레스 저/강상진·김재홍·이창우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도서출판 길(2011), 146.
계산하고 논증하는 능력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기에 국민이 원하는 판사는 항상 친절하기만 한 판사가 아니라 부당한 것에는 같이 화를 내주는 판사가 아닐까.
그렇다면 판사는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테리 마로니 교수는 ‘정당하게 성내는 판사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녀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기초로 사건과 관련 있는 사항에 대하여만 믿음과 가치를 반영하여 화를 내야 한다고 하였다. 분노표현이 여러 단점도 있겠지만 주의를 집중시키고 반응을 촉진하여 판단에 도움이 되는 장점도 있으니, 그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분노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사려 깊게 반응하며, 이를 재판에 적절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하였다.[4]
[각주4] T. Maroney, “Angry Judges”, 65 Vanderbilt L. Rev. 1205 (2012).
복잡하게 얽힌 사실관계로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위 모델처럼 완벽하게 성내는 판사가 되기 무척이나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당사자와 대리인이 느끼는 분노를 이해하고 최소한의 공감이라도 드러내는 것이 믿음을 주는 재판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이희준 고법판사(서울고등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