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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는 판사
이희준 고법판사(서울고등법원)
2023-09-18 0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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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는 법원 근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감정이다. 원고는 피고에 대한 분노를 가슴에 품고 법원에 소장을 낸다. 서로의 주장을 논박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노여움은 점점 커진다. 판사 앞에 왔을 때, 당사자들은 이미 ‘화’로 충만해 있다.

법정이 ‘화’로 가득 차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판사도 법정에서 분노의 감정을 느끼기도 한다. 법을 모욕하는 당사자에게, 거짓말만 되풀이하는 증인에게, 혹은 드물게는 매우 부적절한 소송행위를 하는 대리인에게. 판사가 분노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을 뜻하는 ‘벤치슬랩’(benchslap)이라는 단어도 있을 만큼 미국에서는 성내는 판사가 그리 드물지 않은 모양이다.

판사가 이처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적절한 것일까? 근대에는 감정표현이 없는 자동포섭기계가 이상적인 판사라고 보았다. 판사도 사람인지라 사건을 접하며 느끼는 감정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에도 다수의 견해이다. “우리는 증거조사를 하지만 아무런 감정을 갖지 않는 로봇은 아니다. 그러한 감정을 인정해야 하지만, 한편에 치워놓아야 한다.”(소니아 소토마요르)[1] 


[각주1] 2009년 7월 14일 미연방대법관 인사청문회 당시의 발언.

“만족해하는 판사나 성내는 판사는 조심하라!”(리처드 포스너)[2] 

 

[각주2] R. Posner, How Judges Think, Harvard University Press(2008), 110.


그러나 노여움이라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지나쳐도 안 되겠지만 모자라는 것 역시 적절한 것은 아니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일에 대해 화를 내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고 마땅한 방식으로 화를 낼 줄도, 마땅한 때에 마땅한 사람에 대해서 화를 낼 줄도 모르는 사람 역시 어리석은 사람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3] 

[각주3] 아리스토텔레스 저/강상진·김재홍·이창우 역, 니코마코스 윤리학, 도서출판 길(2011), 146.


계산하고 논증하는 능력에서 인간을 압도하는 인공지능이 출현하는 시기에 국민이 원하는 판사는 항상 친절하기만 한 판사가 아니라 부당한 것에는 같이 화를 내주는 판사가 아닐까.

그렇다면 판사는 어떻게 화를 내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테리 마로니 교수는 ‘정당하게 성내는 판사 모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녀는 정확한 사실관계를 기초로 사건과 관련 있는 사항에 대하여만 믿음과 가치를 반영하여 화를 내야 한다고 하였다. 분노표현이 여러 단점도 있겠지만 주의를 집중시키고 반응을 촉진하여 판단에 도움이 되는 장점도 있으니, 그 장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표현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해 분노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사려 깊게 반응하며, 이를 재판에 적절히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도 하였다.[4]

 

[각주4] T. Maroney, “Angry Judges”, 65 Vanderbilt L. Rev. 1205 (2012).


복잡하게 얽힌 사실관계로 누구에게 화를 내야 할지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 위 모델처럼 완벽하게 성내는 판사가 되기 무척이나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당사자와 대리인이 느끼는 분노를 이해하고 최소한의 공감이라도 드러내는 것이 믿음을 주는 재판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다.


이희준 고법판사(서울고등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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