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미법 국가에서 변호사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당연히 금지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압수수색의 대상을 가리지 않고 범죄의 증거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영장의 발부 요건이 충족된다. 예외적인 경우이기는 하지만, 변호사 스스로 위증교사 등 업무집행 과정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현재 진행 중인 의뢰인의 범죄행위에 조력할 수도 있다. 이 경우 해당 변호사의 사무공간, 컴퓨터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금지될 이유가 없고 변호사-의뢰인 특권도 적용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모든 국민에게 사생활의 보호,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형사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이 헌법상 보장되어 있는 터에 변호사-의뢰인 사이의 통신이 수사기관에 강제로 공개될 수 있다면 위 헌법상의 기본권들은 공허한 것이 된다. 그래서 변호사에게 의뢰인의 비밀을 유지할 특권이 인정되고 변호사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제한을 받지만 이러한 특권에 의하여 보호되는 것은 변호사 개인이 아니라 의뢰인인 일반 국민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4조는 비합리적인(unreasonable) 압수수색으로부터 개인, 주거, 서류 등의 안전을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법원은 변호사-의뢰인 특권이 부당하게 침해된 경우 그 압수수색이 비합리적이라거나 특권이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압수수색에 의하여 수집된 증거의 증거능력을 부정해 왔다. 또한 변호사의 주거, 사무실, 컴퓨터 등에는 그 변호사와 상담을 하거나 그에게 절차진행을 위임한 불특정 다수인의 사건에 관한 기록, 증거자료, 메모 등이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변호사 개인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변호사-의뢰인 특권으로 보호되어야 하거나 또는 해당 사건과 무관한 엉뚱한 사람들에 관한 자료들이 수사관에게 그대로 노출될 위험이 있다.
미국 법원은 일찍이 특별조사위원(Special Master)을 이용하여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는 수사관이 압수물의 내용에 접근할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해 왔다. 특별조사위원을 임명할 것인지 여부는 법원의 재량에 속하지만 변호사-의뢰인 특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는 대체로 이를 허용해 왔다.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한 수사관은 압수된 서류 등의 내용을 보지 않은 채 봉인조치를 취한 다음 이를 특별조사위원에게 인계한다. 그러면 특별조사위원은 법원의 감독 아래 압수물 중 피의사실과 관련성이 있고 특권의 보호를 받지 않는 것만을 골라내어 수사기관에 넘겨주고 나머지 압수물은 피압수자에게 반환한다.
캘리포니아 주의 특별조사위원 제도를 살펴보기로 한다. 특별조사위원은 캘리포니아 변호사협회에 5년 이상 등록된 변호사여야 한다. 그리고 이해관계의 충돌을 피하기 위하여 국선변호인, 검찰청에 고용된 변호사, 형사법 전문 변호사로 공인된 자, 법집행기관 소속의 변호사 등은 후보군에서 제외된다. 과거 10년 이내에 변호사윤리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자도 특별조사위원 자격이 없다. 캘리포니아주 형법은, 변호사협회에 특별조사위원 후보 명부를 유지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2018년 4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Michael Cohen)의 사무실과 컴퓨터에 대하여 캘리포니아주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이 집행되었는데, 이때도 전직 연방판사가 특별조사위원으로 임명되었다. 특이한 점은 검찰이 특별조사위원의 역할을 하는 특권보호팀(Privilege Review Team)을 구성한 다음 특별조사위원의 임명에 반대하다가 그 주장을 철회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검찰이 직접 수사를 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스스로 특권보호팀을 구성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특별조사위원의 임명 여부는 법원의 재량에 속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플로리다 사저에 대하여는 2022년 8월 연방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이 집행되었는데, 검찰의 특권보호팀이 구성되고 특별조사위원은 임명되지 않았다.
윤남근 변호사(법무법인 클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