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順)은 “순하다 따르다 화하다”의 뜻입니다. “따르다” 의 뜻이 있어 순서라는 뜻도 생겼습니다. “화하다”가 있어 편안하다의 의미도 지니고 있습니다. 이 글자는 내 천(川)과 머리 혈(頁)이 합해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냇물이 흐를 때 반드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마찬 가지로 사람도 흐르는 물과도 같이 머리를 숙이고 성현의 도리를 따르는 것이 순(順)의 본 뜻입니다. 순서(順序)나 화순(和順)이 모두 이런 높은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차례를 어기거나, 남의 자리를 범하는 것은 순서를 지키는 일이 아닙니다.
물이 흐를 때 먼저 가려고 다투지 않듯이 순(順)한 사람은 질서를 지킵니다. 참을 줄도 알고 기다릴 줄도 아는 것이 물의 마음이지요.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도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흐르는 물은 절대로 혼자만 먼저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란히 함께 가지요. 강물의 흐름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자강불식(自彊不息)도 그런 의미입니다.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물이 그렇습니다. 하루에 열 시간을 일하고 다음 날은 한 시간도 일하지 않는 식의 방식은 자강불식(自彊不息)이 아닙니다. 오늘도 내일도 언제나 그 수준으로 꾸진히 노력하는 것이 자강불식이고 이것이 물의 성질입니다.

혈(頁)은 인체의 목에서 윗부분 정수리까지를 말합니다. 이 혈(頁)은 사람 머리를 상형한 모양입니다. 사람에게 있어 머리만큼 중요한 부분이 없습니다. 모든 생각이 이 머리 모양 속에 있는 두뇌를 통해 작용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형이하학이니 형이상학이니 하는 말로 표현하는 것도 이 두뇌의 역할을 강조한 것입니다. 형이하학(形而下學)은 형체가 있는 구체적 대상을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의학이나 식물학이나 공학 같은 것은 형이하학입니다. 반면에 형이상학(形而上學)은 사물의 본질이나 존재의 근본 원리 등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흔히 인문학이라고 하는 문학, 역사, 철학 등이 형이상학에 해당됩니다. 이런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사람의 목 윗부분의 일입니다.
옛적 부모들은 자녀의 진로를 실용적인 학문, 이를테면 법학, 의학, 공학 쪽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을 바라는 시절이었지요. 철학이나 문학을 하겠다면 굶어 죽는다고 했습니다. 절대로 못하게 말렸지요. 그러나 세상은 고정 불변이 아닙니다. 어느 한 순간도 변하지 않는 때가 없습니다. 봄인가 했더니 여름이고, 아침인가 했더니 한낮이 되어 있습니다. 밤은 나쁘고 낮만이 좋은 시대는 갔습니다.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좋은 세상입니다. 누가 그 순(順)한 리듬을 타느냐가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