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에서 청운의 뜻을 품고 서울에 소재한 학교의 법대에 들어가 1학년 겨울방학 때, 필자에게는 읽어도 읽어도 재미있는 책이 한 권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라는 제목의 고시합격수기 모음집이었다. 암자에서 두문불출하며 공부한 이야기, 개구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공부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 아내와 아이까지 있으면서도 7전 8기로 합격한 노장 수험생의 이야기, ‘겸손한’ 수석 합격자의 이야기, 엉겁결에 합격했다는 최연소 합격자의 이야기 등 모두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그런데 대학 3학년 때인가, 한 노교수께서 수업 중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다. “어느 고시합격수기집을 보니 그 제목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이더라. 법조인 생활 한 40년하고, 이제 법조인 생활을 정리하면서 하는 말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이라면 공감할 수 있겠지만, 이제 시험합격하고, 막 첫발을 내딛는 사람이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이라니. 공감이 어렵다”는 말씀이었다. 그 말씀은 필자에게는 약간 충격이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었고, 대학생활이 무료하고, 법학 공부가 힘들게 느껴지면 책꽂이에서 꺼내어 읽곤 하던 나의 바이블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상황이 참 많이도 변했다. 당시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그 순간 이미 화려하고, 돈 잘 벌고, 남에게 굽신거리지 않을 수 있는 지위가 보장되는 시기였다. 그러기에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이라는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본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사법고시’는 ‘사법시험’으로 변했다. 그리고 이제는 ‘변호사시험’이 그 자리를 대체해 가고 있다. 수석 합격자, 최연소 합격자, 최고령 합격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은 점점 사그라졌고, 그들에 대한 뉴스가 언론에서 차지하는 지면의 크기도 점점 작아져갔다. 그리고 이제는 판·검사 임관을 해야 30여년 전의 고시 최종합격 정도의 기쁨을 맛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자, 이제 이런 상황에서 막 시험에 합격한 분들에게 묻고 싶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시겠는가? 그리고 이 어려운 법조시장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는 법조인들에게 여쭙고 싶다.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시겠습니까? 법조인이 되려 했던 나의 진정한 속내는 무엇이었고, 이제 무엇을 추구하여야 하는가? 20년 전 내 바이블이었던 책 속의 문구를 이 ‘법조 격동의 시기’에 필자 스스로에게도 화두처럼 되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