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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 외과의사도 자신의 가족은 수술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의사 본인이 떨려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 가족도 자신을 수술하도록 맡길 것 같지 않다. 특히 부부간의 경우에는 그럴 것이다. 집에 오면 싱거운 소리나 해대고, 주말이면 소파에 퍼져서 프로야구 중계나 보며, 술에 취하면 코를 골며 자는 평범한 인간으로 느껴지는 남편에게 자신의 배를 가르도록 맡길 부인이 몇이나 될까? 변호사도 가족의 사건을 맡게 되면 몇 배로 힘이 든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만일 남편이나 아내의 사건을 맡게 되면 아마도 부부싸움이 몇 배로 늘어날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필자의 경우 집에 가면 아내와 직장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는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아내는 필자가 변호사로서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알지 못하였다. 아내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 중 유명 변호사들이 나와 이야기하면 아내가 ‘저 이야기가 맞아?’라고 묻기도 했는데, 필자는 항상 ‘뭐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필자의 실력에 대한 아내의 신뢰는 더욱더 무너져 갔다.
그런데 몇 년 전 필자가 변호사로서 인정받는 최초의 사건이 발생했다. 아내는 보험판매원의 말만 믿고 보험을 가입하였고, 1년여 보험료를 납부하였다. 그러던 중 보험사고가 발생하였고, 아내는 보험금을 청구하였다. 보험회사의 대답은 지급거절이었다. 보험판매원의 말과는 달리 보험의 보장범위에 속하지 않는 사고라는 이유였다. 아내는 해당 회사에서 연결해주는 대로 이 직원 저 직원에게 같은 내용을 처음부터 열심히 다시 설명해야 했지만, 듣는 대답은 계속 ‘지급할 수 없다’였다. 며칠 동안의 말씨름에 지친 아내는 필자에게 사건을 설명했다. 필자는 ‘사건수임’을 하였고, 며칠 후 아내는 담당자의 ‘진실한’ 사과와 지금까지 지급한 보험료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되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때 아내가 한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신 정말 대단하다.” 결혼생활 동안 아내에게 최고로 칭찬받은 순간이었다. 필자는 “그까짓거 뭐…”하고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속으로 외쳤다. ‘그래, 나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변호사다!’
변호사라는 직업, 요즘 어려워졌다는 말도 많지만 사람들의 아픔을 해결해 주고 권리를 찾아줄 수 있는 정말 자랑스러운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