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보면 특이했던 광고 문구처럼 ‘참 중요한데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는 경우’가 있다. 필자는 그러한 경우 아주 가끔-너무 사용하면 좀 고루한 느낌이 들까봐-사자성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네 글자이지만 그 힘은 놀랍다. 말하고 싶은 것을 강렬하게 전달해 줄 수 있다. 우화나 일화까지 곁들여 있기 때문에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서양의 탈무드, 이솝우화보다도 우리 동양문화권의 사자성어가 훨씬 훌륭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정말 오래되었을 사자성어도 걸그룹 노래처럼 유행을 탄다. 유명인들이 사자성어를 안성맞춤으로 사용하면-너무 식상하게 자주 사용되는 것이어서는 안 되고, 너무 직설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가 드러나서도 안 되며, 스님들의 선문답정도는 아니어도 청중들이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좀 있어야 적절하다-그것이 유행이 된다. 최근에는 ‘우생마사’라는 사자성어를 자주 듣게 된다. 원래 말이 소보다 수영을 훨씬 빨리 잘 하지만, 홍수가 났을 때 말은 물살을 거슬러 빨리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다가 지쳐서 죽는 반면 소는 물살에 따라 헤엄치면서 조금씩 육지 쪽으로 다가가 살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단, 그게 사실인지 필자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굳이 말 한 마리를 희생시키면서-잘못하면 소도 희생될 수 있다-확인해 보고픈 생각도 없다.
어찌보면 소의 행동이 별거 아닌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쯤 물에 빠져 본 사람은 소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물에 빠지면, 특히 물난리 때 그 엄청난 물에 휩쓸렸다면 사력을 다해 1분, 1초라도 빨리 육지로 나가 살고 싶은 것이 당연지사인데, 그러한 조급함을 이겨낸다는 것은 정말 신기에 가깝다. 아직 법조인으로서, 교수로서 초반단계임에도 불구하고 빨리 업적을 만들고 싶고, 남들보다 앞서 나가고 싶어 발버둥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해준다. 1년, 한 학기, 한 달 내에 뭔가 괄목상대할 만한 성과를 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생각에 열심히라도 하면 좋은데 또 그건 아니다. 뒤집힌 거북이의 괴로운 발버둥일 뿐이다.
그래, 앞으로 사반세기 넘게 교수이자 법조인 생활을 더 해야 한다. 그리고 반세기는 더 살 수 있다. 너무 서두르지 말자. 말처럼 죽으면 다 헛것이다. 스스로 어깨에 힘을 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