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적인 문구이다. 그에 비하여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도 있다.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문구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
최근 재벌 3세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말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국민 모두가 애쓴 덕분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죄명이 탈세나 배임죄가 아니었다. 정확한 사실은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그 발단은 부하직원에 대한 폭언에서 시작되었다. 항로변경죄, 업무방해죄, 증거인멸죄 등이 혐의 죄명으로 거론된다. 이런 죄가 모두 인정된다고 하여도 구속사건이 대폭 감소한 현실을 고려할 때 이번 사건에 대한 구속수사는 다소 이례적이다. 국민과 언론의 관심도 지대하여 우리 헌정사에 길이 남을만한 사건인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해산결정에 대한 관심마저 압도할 정도였다. 이러한 국민의 전폭적 관심을 설명하기 위하여 혐의 죄명을 한 가지 더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로 ‘노블리스 노블리죄(noblesse noblige)’이다.
현재 우리 국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일까? 필자의 판단으로는 ‘돈’이다. 새해 희망 1순위는 ‘올해 대박나는 것’이고, 정부에 대한 바램 1순위도 ‘경제살리기’이다. 모든 것이 돈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모두 부자가 되기를 열망하며 부자가 된 사람에 대하여 부러움을 넘어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현실이 꼭 잘못된 것이라 말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 맞는 정신적 가르침도 뒤따라 줘야 한다. 그럼에도 전통적인 윤리의식은 갈수록 약해져 가고 있다. 과거 유교적인 전통에 따른 예의범절은 하나 남은 단무지를 누구도 감히 먹지 못하는 눈치보기 상황 정도에서나 확실히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새로운 정신적 가르침과 전통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자본주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전통 중 하나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전통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경주 최부자집에서 이어지는 한국형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전통이 굳건하게 자리잡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단순히 재산을 가진 부자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권력을 가진 자, 정보를 가진 자, 지식을 가진 자 모두 ‘가진 자’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하여야 할 것이다. 노블리스 노블리죄, 그것은 구속까지 가능한 중죄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