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항상 환하게 살고 있지만 예전과 달리 요즈음 들어 오히려 보기 어려워진 빛도 있다. 별똥별, 반딧불도 요즈음 참 보기 어려운 빛이다. 필자도 마흔 평생에 단 한번 별똥별을 봤고, 딱 한번 반딧불을 보았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다. 모두 강원도 산골에서 군복무하던 시절이었다. 요즘 어린이들은 돈을 주고 축제장소에 가야 반딧불을 볼 수 있다. 별똥별도 마찬가지이다. 별똥별이 마구 떨어진다는 우주쇼가 벌어지는 날짜가 뉴스를 통해 예고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날 근처 천문대에 간다면 많은 별똥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 모두 이런 이야기 한번쯤 들어본 일이 있을 것이다.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그것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소원을 이루기 위해 우주쇼 하는 날 천문대로 가면 될까?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길가다가 우연히 보게 되는 별똥별처럼 소원을 들어주는 힘이 영험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 그럴까? 자연산 광어와 양식 광어가 맛이 다르듯 별똥별도 효능이 다른 것인가?
왜 별똥별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질까? 이와 관련 예전에 후배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별똥별은 수시로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정말 보기 어렵다. 게다가 별똥별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게 정말 순식간에 떨어진다. 떨어질 별이 다른 별들과는 다르게 깜빡깜빡하다가 ‘나 떨어져유’ 하고 신호하면서 하늘 정점에서 지평선 끝까지 쭈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불꽃놀이를 상상하면 안 된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하늘 한켠에서 살짝쿵 선을 그리다 사그라져 버린다. 시간으로 말하면 필자가 본 별똥별은 1초도 안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순간, 전혀 준비되지 않은 그 순간 소원을 빈다는 것은 정말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정말 하루 24시간 중 24시간 동안 그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그렇게 간절한 소원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에 대하여 무진장 노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법학적으로 인과관계를 다시 설명해 본다면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 소원을 빌어서 소원성취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별똥별이 떨어지는 찰나 소원을 빌 수 있을 만큼 간절한 소원이고, 그에 몰입되어 있기에, 그만큼 노력하였기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법조인들 모두 그러한 간절한 꿈을 품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그것을 성취해가는 행복한 한해를 보내시기를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