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원까지 21년을 학교에 다녔다.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께 정말 많은 시간동안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그분들로부터 들었던 수업내용 중 기억남는 것이 별로 없다. 그 분들에게 배운 많은 가르침들이 나의 대부분을 형성했을텐데 딱히 기억남는 수업내용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별로 웃기지도 않았던 농담 등 정말 ‘왜 그런게 생각이 나지?’하고 의아해할 만한 말씀이 기억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어떤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 분은 특별히 내가 존경하는 분도 아니었고, 많은 시간 수업을 해주셨던 분도 아니었다. 성함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 분이 해주셨던 말은 이것이었다. "우리가 정말 인사만 제대로 잘 해도 인생 성공할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참 인생을 모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말이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해 주셨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최근 ‘부자들의 성공하는 습관’ 같은 성공학개론서에도 없는 이 말이 정말 명언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선배 법조인들을 만나면 어떤 분들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요즘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 기본이 안됐다. 너무 버릇이 없다.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라고 가시 돋친 충고를 해준다. 그 이유를 물으면 아주 구체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어떤 분들은 단순한 이야기를 한다. 도대체 선배들을 봐도 인사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거리에서, 회의장에서, 그리고 법정에서 아는 선배 법조인들을 만나도 먼저 인사를 안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필자가 아주 버릇없는 인간은 아니지만-고등학교때 특이한 선인을 만나 참된 인생의 교훈까지 설파 받았음에도-선배들에게 인사를 해야하는데 인사를 못하는 경우가 있다. ‘안녕하세요’하고 먼저 반갑게 인사하기가 어려운가? 어렵다. 저기 멀리에서 아는-아주 잘 아는 친구같은 사람이 아닌, 오래 전에 인사를 나눴던 경험이 있는 정도의-선배 법조인이 있을 때 속으로 고민한다. "인사를 해야할까? 날 기억이나 할까?" 그러다 ‘아이 컨택’의 실패로 한번 인사를 안 하면 다음에 그 분을 보면 인사하기 더 어려워진다. 알지만 모르는체 해야하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굳이 ‘김영란법’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돈과 선물로 인간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그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더 위력을 발휘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인사만 잘해도 성공할 수 있다.’ 새학기 로스쿨 신입생들에 대한 수업시간에는 ‘인사잘하기’라는 초등학교 도덕책 구절로 수업을 시작해 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