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국민은행
top-image
logo
2023.06.04 (일)
지면보기
한국법조인대관
법조프리즘
물어보기
인터넷 null
2015-03-05 16:29
변호사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게으른 천성은 변하지 아니하여 일할 때마다 어렵고 힘들기는 여전하다. 그래도 먹고 살려다 보니 기술 하나는 확실하게 닦았는데, 그것은 '물어보기'이다.

사법연수원을 갓 마친 새내기 변호사 시절 영문계약서를 국문으로 번역하는 일이 있었다. 꽤 양이 많고 글자가 빽빽하여, 받아들고 처음에 “까만 건 영어고 하얀 건 여백이구나”하고 한숨을 쉬었다. 어찌어찌 마치고 선배의 검토를 받는데 ‘security interest’에서 딱 걸렸다. 문맥상 담보권으로 옮겨야 할 것을 용감하고 무식하게 ‘증권이자’로 옮겼던 것이다. 망신을 당하고, 자신 없으면 물어보면서 하라는 선배의 충고를 그 뒤로 잘 지켜왔다.

실력은 없으나 자존심(이라 쓰고 고집이라 읽는다)은 세어, 누구에게 물어본다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이런 걸 물어보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할까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그런데 내 고집과 걱정을 한번에 날려버린 계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몇 년 전 어느 대법관 인사청문회 속기록을 보고 나서였다. 당시 그 대법관 후보자의 선배인 저명한 변호사님께서 참고인으로 나와 하신 말씀이, 가끔 자기가 뭘 물어보면 그 후보자가 “형은 맨날 내가 모르는 것만 물어보냐”라고 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체 없이 세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대법관 되실 분도 모르는 게 있구나, 둘째, 저명한 변호사님도 모르는 게 있구나, 셋째, 그런 분들도 모르면 물어보는구나.

유레카와 같은 깨달음을 얻은 내가 누구에게 물어보는 건 더 이상 창피하거나 한심한 일이 아니었다. 재조·재야, 선배·동료·후배 가릴 것 없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잘 알 것 같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건 업무상 필수과정이었다. 그래도 인복은 많았는지, "너는 맨날 내가 모르는 것만 물어보냐"며 투덜거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어봤다는 사실도 잊어버렸는데 며칠 지나 외국 문헌까지 찾아보고 이런 견해가 있다고 알려준 분도 있었다. “불량한 제자를 법조인으로 판매하였으니 수료 후에도 하자담보책임을 부담하셔야 한다”는 명분 앞에 사법연수원 은사님들은 특히나 힘드셨을 것이다.

필자가 여태 변호사로서 뭔가 일을 잘 했던 것이 있다면, 나의 뻔뻔한 물음에 맨날 모르는 것만 물어보냐 투덜거리지 않고 진지하게 도와주었던 선후배 동료들의 공덕이 9할은 될 것이다. 법률신문을 통한 공고의 방법으로 감사의 마음을 밝힌다.
리걸 에듀
1/3
legal-edu-img
온라인 과정
전사원이 알아야 할 계약서 작성 상식
고윤기 변호사
bannerbanner
footer-logo
1950년 창간 법조 유일의 정론지
지면보기
굿모닝LAW747
LawTop
footer-logo
법인명
(주)법률신문사
대표
이수형
사업자등록번호
214-81-99775
등록번호
서울 아00027
등록연월일
2005.8.24
제호
법률신문
발행인
이수형
편집인
차병직 , 이수형
편집국장
배석준
발행소(주소)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396, 1402호
발행일자
1999.12.1
전화번호
02-3472-0601
청소년보호책임자
김순신
개인정보보호책임자
김순신
인터넷 법률신문의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전제,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인터넷 법률신문은 인터넷신문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