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놓고 면전에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는 쉽지 않다. 잘못하면 그 사람과 원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하는 사람이 상대방 기분 좋으라고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비판하고 싶은 생각에서, 또는 상대방을 위하여 그런 말을 할 것이다. 그에 반하여 칭찬은 접대성인 경우가 많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한때 크게 유행 하였다. 이 책 때문인지 필자도 정말 의례적 칭찬을 많이 하게 되고, 때로 그런 칭찬을 듣고 있다. 그런데 이런 칭찬하는 말만 믿다가는 자기 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히려 비판을 자주 듣고 그에 대하여 귀와 마음을 여는 것이 자기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진짜 칭찬과 예의상 칭찬을 구별할 줄 알아야한다. 의례적인 칭찬을 진짜 칭찬인 줄 알고 흐뭇해하다가는 도태되기 쉽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짜 칭찬일까? 이와 관련 선배교수 한 분이 재미있는 경험을 이야기 해 주었다. 본인의 딸과 같이 있다가 어떤 지인을 만났는데 그 지인이 본인의 딸을 보고는 아주 너무 신기하다는 듯이 “어! 아빠를 닮았는데 진짜 예쁘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딸이 아주 예쁘다고 진심으로 인정하고 칭찬한 것이라 정말 기분 좋기도 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말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무시한 것이라 기분이 묘했다고 하였다. 필자가 이 말을 했던 그 지인의 마음상태를 분석해 본다면 이 말은 정말 진심에서 나온 말이지 접대성 칭찬은 전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변호사 생활 중에는 항상 시간에 쫓기며 보고서, 의견서, 준비서면을 써야했다. 좀더 연구하고, 정리해서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연구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바빴다. 그리고 점점 그런 변호사생활에 익숙해져버렸고, 언제부터인가는 그러한 소망조차도 잊고 닥친 상황에서 적당히 서면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연구가 주업인 교수가 되었는데도 항상 마감 시한에 쫓겨 글을 쓰고 있다. 논문제출 마감 날에는 항상 자정을 넘긴 시간에 모니터 앞에서 눈이 시뻘게져서 게을렀던 과거를 후회하며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흔들어 대고 있다.
아직 매너리즘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교수가 된 이후 언젠가 대작을 쓰고 싶은 소망은 더 간절해져 가고 있다. 내가 완성한 글을 읽고 나를 정말 싫어하는 그 누군가가 “저자는 진짜 싫지만 이 글은 정말 최고네!”라고 말해주는, 엄지가 저절로 올라가는, 가슴으로 감탄하는 진짜 칭찬을 들을 만한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