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금죄를 둘러싼 셀프감금(?)이 또 논란이 됐다. 법치주의 혼돈의 시대다. 중국의 진(秦)나라는 법으로 나라를 다스려 천하통일을 이뤄냈다. 이런 진나라에 양왕(襄王)이 있었는데, 이 양왕이 중병에 빠졌다는 소문이 퍼지자 백성들이 근심걱정으로 천지신명에게 빌었다. 그리고는 이들 기도대로 임금이 쾌차하였다는 소식에 기뻐 또다시 소를 제물로 바치고 감사의 제(祭)를 지냈다. 그런데 양왕은 이 일을 전해 듣고 오히려 그 지방의 관리와 백성들을 벌하였다. 군왕이 백성들을 부릴 수 있는 이유는 백성들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데, 백성들이 자신의 와병에 소를 바쳐 제를 지냈다는 것은 그들이 권세(權勢)보다는 인애(仁愛)로써 자신들을 통치한다고 생각한 것이고, 왕이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왕의 부림을 거부할 것이므로 벌을 통해 법과 권력의 권위를 세워야하기 때문이었단다. 이것이 법가의 정신이었으며, 억압과 압제적인 법치의 진나라는 결국 망국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중국 5000년 역사에 수많은 나라가 법가를 통치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우리는 중국을 법가라고 부를지언정 법치국가라고 칭송하지 않는다. 교과서적으로 법치국가는 국가공동생활의 기본인 규범을 정하고 국가작용이 이를 지키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존엄과 자유를 존중하며 평화로운 공동생활의 전제가 되는 정의로운 환경을 조성하고 국가의 권력작용을 순화시켜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원리로 이해된다. 여기서 중국의 법가처럼, 백성들의 존엄과 자유를 존중하여 평화로운 공동체의 사회질서 형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왕의 절대적인 권위의 보장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면 법치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 인도네시아는 최근 마약범죄로 골머리를 앓자 악어가 교도소 외곽을 경비하는 섬교도소를 구상 중이라고 한다.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수치여사는 아들의 외국 국적으로 인해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헌법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없다면 ‘대통령 위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한다. 이들이 실질적 법치국가의 모습일까?
법학을 배우고 법조실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법치국가 원리를 접하면서 정의로운 법치국가 이념에 대해 일종의 신앙과도 같은 신념이 있다. 그런데 최근 좌우이념 논쟁의 연이은 이슈로 혼란스러운 정국과 총선 등 복잡한 이해관계의 셈법에 빠진 정치인들의 막장정치(?)로 우리가 믿어왔던 법치국가의 이념마저 흔들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자신의 직위와 정치색에 따라 법치국가의 원리는 변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혹여 졸업한 새내기 변호사 제자들이 법치주의를 다시 물어보면 나는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