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에 회자되는 우스개 이야기가 하나 있다. 과사무실 조교로 열심히 근무해온 친구가 급히 화장실에 가게 되었는데 용무를 해결하려 변기에 앉아있을 때 갑자기 밖에서 문을 “똑똑”하고 두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똑똑”하는 대신 “네, 들어오세요”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직업병이 화장실에서 발현된 것이다.
사전적으로 직업병이란 ‘한 가지 직업에 오래 종사함으로써 그 직업의 특수한 조건에 의하여 생기는 병’을 뜻하지만, 부정적 의미인 ‘질환’으로서의 질병 외에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검사 A는 아내인 변호사 B에게 아이 학원 문제로 얘기하면서 “왜 저번에 한 말과 달라? 그럼 곤란해”, “솔직하게 얘기해”라는 언어습관으로 혼이 났다고 한다.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여 변호사 C는 낮에는 연일 의뢰인을 상담하다보니 “어머 그러셨어요? 속상하셨겠다”는 말투로 지내고, 매일 늦은 밤까지 사건을 검토하다보니 어둑어둑해지면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 같다고 한다. D판사는 마음속에 저울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친구들의 말에도, 아버지의 말에도 오판을 하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누구의 말이 맞을까하는 고민부터 하고 본다는 것이다.
법조인의 직업병은 판사, 검사, 변호사인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논리에 기반하여 자신의 직업 영역에 투철한 책임감과 성실함이 바탕이 되어 습관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 직업병이 주위 사람들을 가끔씩 당황하게 하고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엄청난 사건 기록과 마음 졸이는 선고 결과 속에서도 힘든 사건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이 직업병 덕분이 아닐까?
직업병은 자신의 일을 성실하게 해냈다는 일종의 자부심이며,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일상이라는 전투에서 승리한 후에 그 공으로 받은 훈장이라고 생각한다. 눈이 침침하고 허리도 아프지만 긍정적 의미의 직업병을 가지게 된 당신은 한걸음씩 훈장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질병으로 의심되는 사전적 의미의 직업병이 심각하다면 전문가인 의사에게 가야할 것이다. '병은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