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원강사가 학원과 기본급·고정급을 받지 않고 퇴직금 등의 수당도 받지 않기로 했더라도 학원과의 관계에서 종속적 지위가 인정된다면 학원은 퇴직금 등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김형두 부장판사)는 최근 서울 청담동의 A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로 일하다 퇴직한 B씨 등 외국인 22명과 한국인 강사 2명이 학원을 상대로 낸 퇴직금등 청구소송 항소심(2013나68704)에서 "학원 측은 강사들에게 총 4억6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1심과 같이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이 기본급이나 고정급을 받지 않았고 근로소득세가 아니라 사업소득세를 원천징수 당했으며, 4대 보험료 등 사회보장제도와 관련해 근로자로 신고되지 않았지만 이러한 사항들은 모두 학원 측이 우월적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항들로서 근로관계의 실질 평가에서 부차적 요소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용자가 노무 제공자의 업무내용을 정하고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노무 제공자가 취업규칙 또는 복무규정 등의 적용을 받는지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장소를 지정하고 노무 제공자가 이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 원자재나 작업도구를 소유하는지 △노무제공자가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해 자신의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에 대한 것인지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학원 측은 정기적으로 워크숍을 통해 영어강의 방식에 대해 교육을 실시했고, 강의 장소와 강의 내용·진도를 일방적으로 정했으며 강의실마다 CCTV를 설치해 강의 내용 등을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를 강사들에게 통보하기도 했다"며 "학원 측의 주장대로 설령 일부 원어민 강사들이 스스로를 근로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생각했더라도 근로관계의 실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강사 계약 조항에 '퇴직금, 건강보험 및 연금을 포함해 정규직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여타의 급부금 지급 대상에 해당되지 않음에 동의하고 이들 사항은 강사의 단독책임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퇴직금청구권의 사전포기에 관한 약정에 해당해 당연 무효"라고 판시했다.
원어민 강사들은 1일 3~6시간씩, 주 4~5일을 근무하며 시급에 월 근무시간을 곱해 산정한 돈을 받았다. 이들은 강사를 그만 둔 이후 학원을 상대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퇴직금과 주휴수당, 연차휴가근로수당을 달라"고 했지만, 학원은 이들이 근로자가 아닌 프리랜서이며 계약 당시 퇴직금 등을 받지 않기로 약정했다고 맞서 소송으로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