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지 변호사(광저우 중재위원회, 충칭 중재위원회 중재인변호사)
중국의 외국중재판정 승인과 집행
한중 양국간 무역관계에서 발생되는 국경을 초월한 국제적인 상사분쟁에서는 소송보다는 중재를 통한 해결 방안이 선호되는 경향이 있다. 주된 원인 중 하나로는 2003년 체결된 ‘한중 민상사 사법공조협약’에서 양국 상호간 판결문을 승인, 집행한다는 규정이 없으며, 실제로 한국 혹은 중국 법원에서 받은 판결문을 상호주의에 의하여 승인, 집행한 사례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한국과 중국[1] 양국은 모두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집행에 관한 UN 협약(이하 ‘뉴욕협약’, 1958년 채택)에 가입하였으며, 이에 의하여 외국중재판정을 승인, 집행하기가 수월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이나 중국에서 내려진 외국중재판정이 상대방 국가에서 쉽게 인정 및 집행된다고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법령 체계나 실무적인 관행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기업이나 외국인 당사자 입장에서는 외국중재판정을 실제로 집행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본 기고문에서는 한국 당사자 입장에서 외국중재판정을 중국에서 승인, 집행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절차나 요건이 필요한지 등에 관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1] 이와 관련해, 1986년 4월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외국중재판정 협약의 승인 및 집행에 관한 통지(중문명: 关于执行我国加入的《承认和执行外国仲裁裁决公约)’ 에서 전국 각급 인민법원의 재판관과 집행관 등을 통하여 ‘뉴욕협약’을 적극적으로 집행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리고 1995년 8월에는 ‘외국 중재 및 외국 중재 사항처리에 관한 인민법원의 통지(중문명: 关于人民法院处理与涉外仲裁及外国仲裁事项有关问题的通知)’ 및 1998년 11월에는 ‘외국중재판정의 수수료 및 심사기간 인정 및 집행에 관한 규정(关于承认和执行外国仲裁裁决收费及审查期限问题的规定)’과 같은 일련의 사법 문건을 잇달아 공표하면서,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에 대한 통일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를 하였다.
1.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
1) 용어 구분
먼저 외국중재판정의 승인과 집행을 위한 구체적인 요건과 절차 등에 관하여 본격적으로 다루기에 앞서, 중국 중재 법체계상 특수한 개념으로서 국제중재(이하, ‘외국중재’), 섭외중재(이하 ‘섭외중재’) 그리고 국내중재 용어를 달리 구분하여 숙지할 필요가 있다.
우선 ‘외국중재’(경외중재)라 함은 중재지가 국외 지역(즉, 경외 지역)인 중재를 지칭한다. 다음으로 ‘섭외중재’는 분쟁에 외국 관련, 다시 말하면 섭외적인 요소가 있는 동시에 중재지는 중국 본토인 국내 지역, 즉 경내 지역인 중재를 일컫는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섭외적 요소라 함은, (i) 당사자 일방 이상이 외국인, 무국적자 또는 외국법인(혹은 단체)인 경우, 혹은 (ii) 분쟁 목적물이 외국에 있거나 민사상 권리의무 관계의 발생, 변경 또는 소멸시키는 법률사실이 외국에서 발생한 경우 등이 해당된다. 이와 같은 기준 외에도, 중국 자유무역시험지구에 등록된 외국법인을 당사자로 한 상사분쟁에 대하여 중재 합의한 경우에는 섭외적인 요소가 있다고 인정될 여지가 있다. 따라서 개별적인 섭외중재 사안마다 섭외적인 요소가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별도로 판단하여야 한다. 만일 섭외적인 요인을 지니지 않는 분쟁임에도 불구하고 ‘섭외중재’ 판정이 내려졌다면, 이는 종국적으로 중국 법원에서 무효로 판단될 가능성이 있다.
참고로 ‘섭외중재’ 안건의 실무적인 현황을 살펴보면, 2022년 중국의 주요 중재기관에서 총 2만 3000여건의 중재 사건을 접수하였는데, 이 중에서 ‘섭외중재’ 안건은 총 1400여건이며, 주요 분쟁 유형은 국제무역, 금융 및 건설 분야에서 발생한 분쟁이 해당되었다.
한편, 이러한 ‘섭외중재’와는 반대로, 중국 중재법에서 말하는 ‘국내중재’는 어떠한 섭외적인 요소도 포함하지 않으며 중재지가 중국 본토, 즉 경내 지역인 중재를 말한다.
2) 법적 근거
중국 「중재법」에 근거하여 중재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며, 중재판정의 강제집행을 위해서는 별도로 인민법원의 집행권원을 얻어야만 한다.
2. 외국중재판정 인정, 승인 신청절차
1) 관할 인민법원으로 신청
중국 법원에서 ‘뉴욕협약’ 다른 체약국의 영토 내에서 내린 외국중재판정을 인정, 집행하기 위해서는 이를 외국중재판정 당사자가 직접 신청하여야 한다. 특히 일방 당사자가 외국중재판정을 이행하지 않는 경우, 상대방은 「민사소송법」 관련규정에 따라 인민법원에 집행을 신청하여야 한다(「중재법」제62조 등 참고). 아울러, 외국 중재판정의 관할 집행법원은 피집행인의 주소지 또는 자산 소재지 중급 인민법원이며, 두 개 이상의 인민법원이 관할권을 갖는 경우에는 하나의 법원을 지정하여 신청할 수 있다. 만일 피신청인이 자연인이라면 호적지 또는 거주지 관할 인민법원, 피신청인이 법인 또는 단체일 경우 주요 대표기구 소재지, 피신청인이 중국 경내 자산이 있을 경우에는 자산 소재지 관할 인민법원에 집행신청을 해야 한다. 그리고 쌍방 당사자 혹은 일방이 자연인일 경우에는 1 년 이내, 쌍방 당사자가 법인 혹은 기타 단체일 경우에는 6 개월 이내에 강제집행 청구를 하여야 한다(중국 「민사소송법」 제 219 조, 제304조 등).
2) 신청 서류
신청인은 하단에 기재된 서류를 구비하여 관할 인민법원으로 제출하여야 한다(‘뉴욕협약’ 제4조, 등). 이 때 외국중재판정문이나 중재 합의서가 외국어로 작성되어 있으면 중국어로 된 번역문을 제출하여야 하며, 원본 문서의 번역문에 대한 공증이나 인증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사전 확인을 요한다.
① 중재판정문 원본 또는 공식등본, ② 중재합의서나 중재조항을 포함한 계약서 원본 또는 그 공식등본, ③ 집행 신청인의 신분증(혹은 사업자등록증, 신청인이 법인이면 대리인 또는 신청인 담당자의 신원 증명서) ④ 집행신청서, ⑤ 위임장(대리인이 있는 경우)
3) 신청 기간
이어서, 당사자가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은 2년이므로, 이 신청 기간을 반드시 준수하여야 한다(중국 「민사소송법」250조). 이와 관련하여, ‘최고인민법원의 중화인민공화국 민사소송법 적용에 관한 해석’에 의하면 외국중재 판정서에 명시된 이행기간의 마지막 날로부터 기산하여 2년 이내로 신청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그리고 외국중재 판정서상 이행기간이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합리적인 이행기간인 당사자에 대한 외국중재판정 송달일 다음날부터 기산하여야 한다. 또한, 집행신청을 위한 시효 정지 및 중단에 대해서는 중국 「민법총칙」 제194조, 「소송시효의 정지 및 중단에 관한 법률」 관계규정 등을 적용한다.
4) 심사절차 및 기준
2002년 3월부터 시행된 최고인민법원의 ‘외국인 관련 상사사건의 소송 관할에 관한 제반문제에 관한 규정’ 및 중국 「중재법」 제58조, ‘뉴욕협약’ 제4조 및 제5조 1항, 2항은 외국중재판정 신청의 승인과 집행을 거부할 수 있는 경우에 관하여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종합하면, 당사자가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신청하면 인민법원은 그 중재판정을 심사하여야 하고, ① 피신청인이 중재인 지정 통지를 받지 못하였거나 중재절차 진행통지를 받지 못하였거나, ② 피신청인의 귀책사유가 아닌 사유로 인하여 의견을 진술할 수 없는 경우나, ③ 중재판정부 구성이나 중재절차가 중재규칙과 일치하지 않는 하자가 있는 경우나, ④ 중재 판정사항이 중재합의상 범위에 해당하지 않거나, 중재기관이 중재권한이 없는 경우 내지는 인민법원이 판정을 집행하는 것이 사회공공질서에 위배된다고 인정되는 경우와 같은 거부사유가 없는 한 중재판정의 효력을 인정하고 집행하여야 한다.
이에 대하여, 중급인민법원은 합의부를 구성하여 심사하여야 하며 집행 신청서를 피신청인에게 송달하고 나서 피신청인은 그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또한, 중급인민법원의 심사를 거친 결정은 송달되는 즉시 법적인 효력이 발생한다. 이러한 중급인민법원의 사법심사 결정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당사자가 항소하거나 재심을 신청할 수 없다. 그리고 당사자가 승인에 대한 신청만 하고 집행에 대해서는 신청하지 않은 경우 집행 기간에 대해서는 중급인민법원의 승인 신청에 대한 결정의 효력 발생일로부터 다시 기산하여야 한다. 아울러, 중급인민법원은 당사자가 ‘뉴욕협약’에 따라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을 접수한 날로부터 2개월 이내로 결정하여야 하고,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6개월 이내에 집행하여야 한다(중국 「민사소송법」 제237조 등).
덧붙이자면, 중급인민법원에서는 외국 중재판정의 집행을 승인하거나 그 집행을 거부할 수는 있으나, 외국중재판정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까지는 없다. 이에 따라 중급인민법원은 국내중재판정이나 섭외중재판정에 대해서만 중국 「중재법」과 중국 「민사소송법」관련 규정에 근거하여 취소할 수 있다.
5) 중국법원의 사전보고제도
중국에서는 1995년 8월 28일 최고인민법원에서 공포한 ‘섭외중재 및 외국중재 관련 문제에 관한 인민법원의 처리에 관한 통지’에 의하여 사전적인 보고제도를 수립, 시행하고 있다.[2]
이에 따라 당사자가 인민법원에 외국중재판정 승인 및 집행을 신청하는 경우, 그러한 중재판정의 승인 및 집행 신청이 중국이 참가한 국제조약의 규정에 부합하지 않거나 상호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에 대한 불집행 결정이나 승인 내지 집행 거절 전에 반드시 당해 관할지역의 고급인민법원에 보고하여 심사를 거쳐야 한다.
아울러, 고급인민법원이 불집행 결정이나 승인 내지 집행 거절에 동의하는 경우에는 그 심사의견을 최고인민법원에 보고하여 결정이 있은 후에 비로소 불집행 결정 또는 승인 내지는 집행을 거부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하면, 최고인민법원에서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집행에 대하여 최종적인 거부권 내지 결정권을 갖는다고 보여진다.
[2] 2017년 12월 26일 최고인민법원은 ‘중재사법심사사건 신고에 관한 규정’ 을 발표하여 위 사전 보고 제도를 “사법해석”으로 격상하였으며, 동시에 적용 범위를 국내 상사중재 분야로 확대하고 구체적인 심사요건도 명확히 하였다.
6) 재산보전 조치 등
중국 「중재법」에 따라, 외국중재절차 중에는 중국 법원에 재산보전 등과 같은 임시적 조치를 신청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 원인으로는 중국의 현행 중재법 체계 하에서는 외국중재절차 진행 중에는 중국 법원에 재산보전 조치나 행위보전, 증거보전과 같은 임시적인 조치를 신청할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사실상 미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법원에서 외국중재판정을 승인·집행하는 결정이 최종적으로 내려지고 집행절차가 개시된 후에는 보전조치를 신청할 수 있다(단, 홍콩은 2019년부터 ‘중재판정의 상호 집행에 관한 최고인민법원의 조치’에 합의함으로써 외국중재절차 중에도 보전조치가 가능한 상황이다.)
끝으로, 2023년 기준으로 중국에는 총 280여개의 중재기관이 설립되어 있으며, ‘2023년 최고인민법원의 상사중재 사법심사 연례보고서’에 의하면, 중국 법원에서 외국중재판정을 인정, 집행한 사건은 69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7% 증가한 수치라고 한다.
한편, 중국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재제도 공신력을 높이고 보다 중재친화적인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외국중재판정의 승인, 집행 용이성을 보장해주는 부분 외에도 외국 당사자의 편의성을 제고하고 외국중재기관의 중재절차 중에도 보전조치를 폭넓게 허용해주는 중재제도와 관련 절차를 수립하여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2021년 마련된 중국 중재법 개정 초안의 경우 금년도 중국 국무원 심의를 통과하였으며, 2024년 11월 4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심의가 제출되어 검토 중에 있다.
더욱이 중재법 개정 초안에 규정된 내용을 살펴보면, 섭외상사분쟁에서 당사자가 임의중재(Ad Hoc)를 약정할 수 있는 근거 및 외국중재기관의 법적인 지위를 규정하는 등 1995년 중국 중재법이 최초 시행되고 2009년, 2017년 일부 개정된 이래로 중재법상 중대한 변화가 예상되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현지 변호사(광저우 중재위원회, 충칭 중재위원회 중재인변호사)
2025-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