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중재 판정부가 절차진행 중 권한 범위를 벗어난 조치를 했다면 그 조치가 결정권 행사가 아니더라도 이의를 제기해 법원에 심사를 구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국제중재 판정부의 절차 진행에 불복할 수 있는 중재법상의 권한심사 규정과 관련한 첫 판결이다.
미국의 원자력회사 웨스팅하우스는 2013년 4월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전 설비 공급 계약과 관련해 대금 문제를 둘러싼 분쟁이 생기자 대한상사중재원에 중재신청을 했다. 양측은 중재과정에서 사용할 중재언어로 한국어와 영어 중 무엇을 쓸지에 대한 입장차를 끝내 좁히지 못냈고, 중재판정부는 한국어와 영어를 둘다 사용하는 것으로 양측에 합의권고를 했다. 그러자 수력원자력 측은 "대한상사중재원 중재규칙상 당사자간 합의가 없을땐 한국어가 원칙"이라며 판정부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판정부는 공용 언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에 수력원자력 측은 "중재판정부의 권한을 벗어난 결정"이라며 법원에 권한심사 확인소송을 냈다. 중재법 제17조는 중재판정부가 중재절차 진행 중에 권한의 범위를 벗어난 경우 법원에 심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1심은 "중재판정부가 중재언어에 대해 합의권고를 한 것은 당사자간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절차진행일뿐 이를 중재판정부의 결정권 행사라고 볼 수 없다"며 "심사의 전제요건을 갖추지 못해 부적법하다"고 각하했다. 그러나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민사19부(재판장 노태악 부장판사)는 16일 한국수력원자력(대리인 태평양)이 미국의 원자력회사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대리인 김앤장)과 대한상사중재원을 상대로 낸 중재판정부 권한심사 확인소송(2014나29096)에서 "원고의 신청이 전제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볼 여지가 높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중재법 제17조3항이 '중재판정부가 중재절차의 진행 중에 그 권한의 범위를 벗어난 경우 이에 대한 이의는 그 사유가 중재절차에서 다뤄지는 즉시 제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이 조항은 권한 범위를 벗어난 '결정 또는 행위를 한 경우'가 아닌 '권한의 범위를 벗어난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따라서 중재절차 진행 중에 판정부의 직권에 의한 권한 행사 또는 시도 등으로 판정부의 권한 여부가 문제될 때 중재당사자는 즉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반드시 권한을 남용하는 실제 결정이나 행위가 행해진 뒤 이의를 제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이는 이 소송이 심사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1심과 판단을 달리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서울고법은 1심과 같이 각하 판결했다. 중재법 제17조8항이 '권한심사신청에 대한 법원의 권한심사에 대해 항고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이 규정은 중재절차를 지연 또는 무력화시키는 당사자의 의도를 방지하는 목적과 불필요한 중재절차의 진행에 따른 시간과 비용 낭비를 막기 위한 목적"이라며 "1심 법원이 당사자의 권한심판청구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보고 실질적인 심사를 하지 않았더라도 이에 대한 불복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1심 법원의 권한심사에 대한 판단을 최종적으로 보고 불복을 허용하지 않는 중재법 규정은 그 취지상 결정이나 판결 등 형식을 불문한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