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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통혁당 사건' 한명숙 前 국무총리 남편, 53년만에 재심서 '무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남편이자 박정희정권 시절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돼 13년간 실형을 산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에게 사건 발생 53년여 만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유영근 부장판사)는 28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13년간 복역했던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2021재고합1). 통혁당 사건은 1968년 8월 당시 중앙정보부가 "남파 간첩이 통혁당을 결성해 혁신 정당으로 위장, 합법화한 뒤 반정부·반미 데모를 전개하는 등 대정부 공격과 반정부적 소요를 유발시키려는 데 주력했다"고 발표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검거된 사람만 무려 158명에 달했다. 박 전 교수는 1968년 5월 부인인 한 전 총리와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고(故) 박경호씨 등을 포섭해 통혁당 산하 비밀조직을 꾸리고 공산주의를 찬양한 혐의로 기소돼 이듬해 1월 열린 1심에서 징역 15년에 자격정지 15년을 선고 받았다. 이후 열린 항소심과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박 전 교수는 13년간 복역을 하고, 1981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박 전 교수는 2018년 "불법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고 가혹행위를 당해 조력을 받을 권리 등을 침해받았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박 전 교수는 여러 차례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에 대한 뚜렷한 증거가 없어 고문을 당했는 지 여부는 확답할 수 없다"면서도 "박 전 교수가 지난 1968년 8월 새벽 중앙정보부 사법경찰관과 수사관에 의해 영장 없이 연행·구금돼 있었던 것이 분명한 이상 당시 진술은 모두 임의성이 없는 것으로 봐 증거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반국가 단체를 이롭게 하거나 회합을 했다거나, 내란을 음모했다고 인정하기에는 사실관계가 너무나 부족하다"며 "이 사건은 시대가 바뀌고 법원이 전향적 판결을 해 결론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그때 당시 법에 의해서도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록과 증거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박 전 교수가 당시 정치와 사법의 희생자라는 것"이라며 "그 희생이 원인이 되고 거름이 돼 오늘날 민주주의가 왔는 지는 알 길이 없지만, 그 당시 법에 의하더라도 박 전 교수는 무죄"라고 판시했다.
국가보안법
박정희
통일혁명당
이용경 기자
2022-01-28
형사일반
[판결] 대법원, '부마항쟁 당시 계엄포고 위법 무효' 첫 판결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부마민주항쟁이 진행되던 1979년 10월 18일 박정희 정권이 부산과 마산에 내렸던 계엄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위법해 무효라는 대법원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9일 부마 민주항쟁 당시 유언비어를 퍼뜨린 혐의(계엄법 위반)로 기소됐다가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던 김모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2016도14781). 김씨는 1979년 10월 18일 "데모 군중이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났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 계엄사령관이 발령한 유언비어 날조·유포를 엄금한다는 내용의 계엄포고 1호를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1981년 2월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를 거쳐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2015년 8월 '부마 민주항쟁보상법'에 따라 부마 민주항쟁 관련자로 인정받자 재심을 청구했다. 부산고법은 2016년 9월 김씨의 재심에서 "김씨의 발언은 유언비어에 해당하지 않으며, 자신의 언동이 유언비어에 해당한다는 인식도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부산고법은 특히 "당시 계엄 포고가 국민의 표현 자유를 제한해야 할 정도로 군사상 필요성이 있는 상태에서 공포된 것이 아니라서 위법·무효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검찰은 "비상계엄의 선포나 계엄 포고령의 발령은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죄형법정주의 위반이 아니다"라며 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며 김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당시 계엄포고는 이른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인 부마민주항쟁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고, 그 당시의 국내외 정치상황과 사회상황이 구 계엄법 제13조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할 때'에 해당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그 내용도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율, 대학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됨은 물론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는 일체의 행위' 등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계엄포고는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되었고, 그 내용도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위헌이고 위법한 것으로서 무효다"라며 "이 사건 공소사실은 형사소송법 제325조 전단에서 정한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과거 유신헌법 하에서 헌법 가치에 부합하지 않고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여 발령된 계엄포고가 위헌·위법하여 무효라고 선언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법치주의 확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충실하게 구현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결의 의의를 설명했다.
유신독재
부마민주행쟁
계엄법
유언비어
이세현 기자
2018-11-29
형사일반
[판결] '인혁당 사건 피해자' 우홍선씨, 1차 인혁당 사건 재심서도 "무죄"
유신시절 2차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사형 당한 고(故) 우홍선 씨가 사형이 확정됐던 2차 인혁당 사건 무죄에 이어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재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66년 1차 인혁당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지 52년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부(재판장 안동범 부장판사)는 1일 1차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았던 우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2018재노7). 박정희정권은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세지자 1964년 '북한 지령을 받아 반정부 조직인 인민혁명당을 조직했다'며 고(故) 도예종씨 등 혁신계 인사 수십 명을 잡아들였고 도씨 등 13명은 한꺼번에 재판에 넘겨져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우씨도 이듬해 별도로 체포·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형을 선고받았다. 중앙정보부는 이후 1974년 유신반대 투쟁을 벌인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인혁당 재건위를 배후로 지목하고 1차 인혁당 사건 연루자들을 다시 잡아들였다. 우씨 역시 붙잡혀 들어가 사형을 선고받은 뒤 18시간 만에 형이 집행됐다. 우씨를 비롯해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은 2007~2008년 재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3년엔 1차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서도 피해자 중 9명이 재심 끝에 무죄를 받았다. 별도로 기소된 우씨는 뒤늦게 재심을 청구해 이날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관련자들은 수사기관에서 가혹 행위를 당해 임의성 없이 자백을 한 만큼 진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그 밖에 피고인이 반공법을 위반했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판시했다. 우씨의 미망인 강순희 여사는 선고 직후 "당시 학생들이 한일 회담에 반대하니까 데모를 막기 위해 배후라고 잡아다가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며 "그렇게 이용했으면 살려는 줘야 하는데 10년 후에 또 데려다 멀쩡한 사람을 죽여놨으니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인민혁명당
우홍선
인혁당
반공법
박수연 기자
2018-11-02
소비자·제조물
[판결](단독) 병원서 필러 ‘데모 시술’ 받던 여성 실명
필러를 수입·판매하는 업체가 주최한 치료실습 프로그램에 참여해 의사로부터 필러 '데모 시술(demonstration)'을 받은 여성이 실명했다면 판매업체에도 25%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7부(재판장 김은성 부장판사)는 성형외과 의사 최모씨, 최씨와 1억 한도로 의사·병원 배상책임보험을 체결한 현대해상화재보험이 필러를 수입·판매한 A사를 상대로 낸 구상금 청구소송(2017나53189)에서 "A사는 최씨에게 37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최근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대웅제약 자회사인 A사는 2012년 10월 히알루론산 성분 필러인 '퍼펙타 덤 서브스킨'의 제품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설명회는 참가자들이 필러 시술을 받을 지원자를 동반하고 참석해 강연자의 시술을 참관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날 필러 시술·교육을 담당하기로 한 최씨는 설명회에 참석한 다른 병원 간호조무사 김모씨의 코끝에 1㎜ 정도의 구멍을 낸 다음 20초간 필러를 주입했다. 그런데 김씨는 시술 직후 심한 통증과 함께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 증상이 나타났고 응급실로 후송했지만 시력이 회복되지 않았다. 김씨는 소송을 통해 최씨로부터 6600여만원, 현대해상으로부터 8200여만원 등 모두 1억4800여만원을 배상받았다. 이후 최씨 등은 2016년 6월 "A사가 시술 현장에 필러 용해제를 비치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1억여원을 부담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히알루론산 성분의 필러가 혈관에 주입될 경우 혈관 폐쇄와 그로 인한 시력 상실, 뇌경색 등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최씨의 시술상 과실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A사도 제품설명회에서 지원자를 모집하면서 시술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안내하지 않았다"며 "응급처지에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필러 용해제를 준비해 두지 않은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작용을 예방하고 안전한 시술을 위한 도구 등을 갖출 의무는 주최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문 의료인인 시술자에게도 이를 확인할 의무가 있다"며 A사의 책임을 25%로 제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A사가 최씨에게 지급해야 할 3700여만원이 최씨가 스스로 지출한 6600여만원에 미달하는 이상 현대해상은 A사에 대한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며 1심과 달리 현대해상의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앞서 1심은 지난해 6월 "A사는 최씨에게 1600여만원을, 현대해상에 20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의사
실습
치료
필러
이순규 기자
2018-01-15
[판결](단독) 직원을 '마루타'로 삼은 새내기 의사
의사가 새로 구입한 레이저 의료기계의 작동법을 익히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병원 직원을 상대로 이른바 '데모(Demo) 시술'을 했다가 부작용이 생겼다면 병원도 50%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이원 부장판사)는 강남구에 있는 A성형외과 직원 정모(30·여·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한림)씨가 원장 박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6가합566264)에서 "박씨는 1억75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최근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박씨는 진료 영역 확장을 위해 모자이크 프락셀 레이저 기계(피부에 레이저를 조사해 세포의 재생을 촉진시키는 시술 기구)를 구입했다. 또 레이저 시술을 시행할 목적으로 의사 이모씨도 고용했다. 이씨는 2015년 2월 의학전문대학원 과정을 마친 후 박씨가 운영하는 A성형외과에 고용되기 전까지 다른 병원 피부과에 근무한 적은 있었지만, 피부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씨는 같은 해 9월 병원 직원들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시험적으로 레이저 시술을 무료로 받을 사람을 모집한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A성형외과 홍보팀 소속 웹디자이너였던 정씨는 자원해 이씨로부터 얼굴에 레이저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시술 직후 36군데에서 움푹 파이고 진물이 흘러나오는 이상 증상이 발생했다. 정씨는 "이씨의 의료과실로 후유증이 발생했으므로 사용자인 박씨는 3억610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사고 당시 이씨는 해당 기계를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사용법을 미리 숙지하지 않은 채 판매업체 직원에게 세 번이나 전화로 문의하면서 시술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는 기계가 별다른 이상 없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팔이나 다리 등 다른 신체 부위에 먼저 테스트를 해 보지도 않고, 흉터가 남을 경우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얼굴에 곧바로 레이저 시술을 시행했다"며 "이씨가 레이저 시술 당시 기계를 잘못 조작해 강도를 지나치게 높게 설정하는 등 의료상 과실을 범했다고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피용자의 이 같은 불법행위가 외형상 객관적으로 사용자의 사업활동 내지 사무집행행위와 관련된 것으로 보여질 때에는 행위자의 주관적 사정을 고려함이 없이 이를 사무집행에 관한 행위로 봐야 한다"면서 "당시 레이저 시술은 근무시간 종료 무렵 병원 내에서 이뤄졌고 병원에서 근무하는 다른 직원이 이씨를 보조하기도 하는 등 외형상 객관적으로 박씨의 사무집행행위에 해당하므로 박씨는 이씨의 레이저 시술로 인해 정씨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정씨도 레이저 시술이 병원 직원들만을 대상으로 별다른 비용 없이 시험적으로 시행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며 원장 박씨의 책임을 50%로 제한했다.
의사
시술
데모
의료기계
의료상과실
이순규 기자
2017-09-07
선거·정치
형사일반
[판결] 부마항쟁 때 손학규 前의원에 유언비어 유포 혐의 서점주인…
1979년 10월 부마항쟁 당시 손학규 전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에게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로 옥살이를 한 서점 주인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부산대학교 앞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노모(65)씨는 당시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유인물을 보관해주는 등 시위를 도왔다. 부산과 마산 지역에는 계엄령이 떨어졌고, 경찰을 비롯해 2600여명의 군인들이 시위진압에 동원됐다. 학생들과 친분이 있던 노씨는 시위 상황 등을 전해들었고, 인권침해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당시 한국기독교연합회 간사였던 손 전 고문에게 "데모하던 여학생이 배가 찢어져 도망을 가는데도 경찰이 쫒아가 몽둥이로 머리를 때리고, 마산 데모서 학생 3명이 맞아 죽었다"고 말했다. 노씨는 유언비어를 유포해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와 계엄법 등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됐고 1981년 1월 징역 2년이 확정돼 옥살이를 하다 같은해 3월 특별사면을 받고 출소했다. 노씨는 2015년 5월 재심을 신청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강영수 부장판사)는 최근 노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2015재노154). 재판부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부마항쟁 진압 과정에서 군경의 물리력 행사로 다수의 시민이나 대학생들이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고 일부 여학생들은 옷이 찢긴 채 연행되면서 맨살이 다 드러나기도 했다"며 "노씨가 손 전 고문에게 전달한 말은 어느 정도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거나 충분히 사실에 바탕을 뒀다고 믿을 만한 상태에서 이를 특정인에게 소극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보여 유언비어 유포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부마항쟁
유언비어
손학규
긴급조치
계엄
특별사면
시위
이장호 기자
2016-01-25
국가배상
민사일반
인혁당 사건 남파간첩 누명 유족에게 28억원 배상 판결
지난 64년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에서 남파간첩의 누명을 쓰고 인혁당 창당 배후로 지목됐던 고(故) 김상한씨의 유족들에 대해 국가가 28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재판장 황적화 부장판사)는 27일 인혁당 발족 배후인 남파간첩으로 지목됐던 김씨의 부인과 자녀 등 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08가합68581)에서 국가가 28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김씨는 지난 62년 특수임무수행을 목적으로 육군첩보부대에 의해 북파돼 행방불명된 후 미귀자로 처리돼 63년 4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에도 64년 중앙정보부와 75년 법무부는 김씨가 북한의 남파간첩으로 인혁당을 조직하고 다시 월북했다는 내용의 수사결과를 발표했으며 2008년 2월에서야 국군 정보사령부가 김씨 유족에게 김씨가 북파돼 행방불명된 사실을 통지하고 전사확인서를 교부했다"며 "북파공작임무의 특성상 기밀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미귀자로 처리한 63년 4월 이후부터는 유족들에게 이를 통지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의무위반으로 김씨의 생사를 알지 못해 유족이 고통을 입었음이 명백한 이상 국가는 이들의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국가의 (인혁당 사건) 허위 발표로 인해 간첩으로 지목된 김씨의 유족들이 명예훼손과 같은 인격적 법익 침해와 함께 신분상 불이익과 경제적 궁핍을 겪는 등 고통을 입었던 점도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씨에 대한 국가의 북파행위 자체에 대해서는 당시 국제적 동서 냉전 상황과 남북간 군사적 긴장상태가 최고조였던 점 등을 들어 위법성을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에 대해서도 "유족들이 북파사실을 통보받은 2008년 2월부터 개시된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고,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연손해금과 관련해서는 수사 결과가 최초로 발표된 1964년부터 지연손해금을 계산해야 한다는 유족의 주장과 달리 북파사실을 통지해 은폐행위가 종료된 불법행위 종료일인 2008년 2월을 기산일로 삼도록 했다. 부산 동아대 교수로 재직하다 사회대중당 후보로 민의원 선거해 출마하기도 했던 김씨는 지난 61년 반국가단체활동을 했다는 혐의(특수범죄처벌에관한특별법위반)로 지명수배됐다가 육군첩보부대 공작원으로 선발돼 62년 북파됐다. 김씨는 임무수행중 연락이 끊겼고 이듬해 63년 전사한 것으로 처리됐다. 중앙정보부는 63년 한일회담 반대시위가 확산되면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 다음해인 64년 8월 '북괴로부터 특수사명을 띄고 남하한 김씨가 인혁당을 창당해 학생데모를 배후에서 조종했으며 월북해 북괴 중앙당에 창당결과를 보고했다"며 제1차 인혁당 사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관련자로 지목된 57명 중 41명 구속하고 16명을 수배했고 1965년 7명에게 유죄판결이 확정됐다. 하지만, 2005년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인혁당이 국가변란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로 실재했다고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지령과도 무관하며, 당시 수사과정에서도 구타와 고문 등 인권유린행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김씨의 유족들은 지난 2008년 "국가가 정치적 이유로 수배당하던 김씨의 처지를 악용해 북파한 뒤 인혁당을 창당한 간첩으로 날조했으며, 이같은 사실을 46년이 지나도록 은폐했다"며 "국가는 75억원을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인혁당사건
남파간첩
누명
창당배후
김상한
허위발표
김재홍 기자
2010-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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