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23개월 된 아이를 잃은 아버지에게 제조업체가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해당 업체가 폐업한 상태여서 실제 배상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1부(재판장 김정운 부장판사)는 11일 가습기 살균제 피해 유족 임모씨(소송대리인 법무법인 바른)가 제조업체인 세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14가합563148)에서 "3억69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세퓨에 대한 책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손해배상 산정은 23개월에 사망한 망인에 대한 위자료와 피해자 아버지에 대한 위자료"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여러차례 원고 측에 입증을 촉구했지만, 추가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0부(당시 재판장 이은희 부장판사)도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가습기 살균제와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세퓨가 피해자 또는 유족에게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손해배상액은 숨진 피해자 부모에게 1억원, 상해를 입은 피해자에게 3000만원, 상해 피해자의 부모나 배우자에게 1000만원이 적용됐다.
하지만 법원의 판결에도 피해자에게 실제 배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세퓨 측의 제품을 제조·판매한 버터플라이이펙트가 2011년 폐업해 사라져 배상이 가능할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모 전 대표는 업무상 과실 혐의로 기소돼 올해 1월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2016고합527).
세퓨가 다른 제조업체들과 달리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피해자들과 조정에 합의하지 못한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당초 임씨를 비롯한 피해자와 유족 총 16명이 세퓨와 옥시레킷벤키저, 한빛화학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올해 3∼4월 세퓨를 제외한 모든 업체가 피해자들과 조정에 합의했다.
2008∼2011년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뒤 원인 모를 폐 손상으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거나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은 2014년 8월 국가와 제조업체들을 상대로 "가습기 살균제의 설계·표시상 결함 때문에 생명을 잃었다"며 소송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