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 개입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57·사법연수원 17기) 전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른바 '직무권한 없으면 직권남용도 없다'는 직권남용죄 일반 법리에 따른 것이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임 전 부장의 행위가 법관윤리강령을 위반한 것이지만, 1심 재판부의 '위헌적 행위'라는 표현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재판장 박연욱 부장판사)는 12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 전 부장판사에게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다(2020노471).
재판부는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는 '계속 중인 구체적 사건의 재판업무 중 핵심영역에 속하는 사항'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서 그에 대한 직무감독 등 사법행정권의 행사를 인정할 수 없다"며 "따라서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는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한다고 볼 수 없어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 카토 타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사건 = 임 전 부장판사는 카토 전 지국장이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카토 전 지국장이 2014년 8월 산케이신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의 행적'에 관한 추측성 기사를 게재해 당시 박 전 대통령과 비선실세로 지목된 정윤회씨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었다. 검찰은 "피고인이 당시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이던 임종헌 전 차장과 공모해 2015년 3월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이모 재판장에게 '기사가 허위라는 점이 확인되면 판결 선고 전이라도 기사의 허위성을 분명히 밝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중간판결적 판단을 요청했다"면서 "임 전 차장과 공모해 2015년 11월 이 재판장에게 판결이유 수정과 선고 시 구체적인 구술내용 변경 등을 요청해 이 재판장이 선고 당일 무죄 판결을 선고하면서 '카토 전 지국장의 행위가 부적절하다'고 언급하도록 했다"며 2019년 3월 임 전 부장판사를 기소했다.
항소심은 "이 사건 재판관여 행위는 '법관은 다른 법관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지 않고,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 있는 경우 어떠한 법리적 조언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법관 윤리강령에 위반되는 것"이라며 "이러한 행위 자체가 부적절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본 1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다만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직권의 행사로 실질적, 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성립한다"면서 "대법원은 '어떠한 직무가 공무원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법령상 근거가 필요하다'고 판시한 바 있어 일반적 직무권한의 범위를 넘는 월권행위에 관해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사법행정권은 '계속 중인 구체적 사건 관련 재판업무 중 핵심영역에 속하는 사항'에 개입할 수 없다"며 "재판의 결론 중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카토 전 지국장이 작성한 기사가 허위임을 확인하고 소송지휘권의 행사로 이를 고지하라고 요청하는 것 등은 '계속 중인 구체적 사건의 재판업무 중 핵심영역'에 해당해 이에 대한 직무감독 등 사법행정권이 없는 피고인은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가 이 재판장의 소송지휘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할 수 없다"며 "권리행사가 방해됐거나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변호사들 체포치상 사건 = 검찰은 "임 전 부장이 2015년 8월 민변 소속 변호사들에 대한 체포치상 사건 판결문을 송부받고, 최모 재판장에게 '양형이유 중에 논란이 있을 만한 표현이 있다'면서 검토를 지시해 최 재판장이 판결문 등록을 취소하고 양형이유 부분을 수정 및 등록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은 "최 재판장으로부터 의견을 달라고 요구받은 적이 없음에도 재판관여 행위를 했다는 점에서 다소 부적절하다"고 밝혔다. 다만 "이 사건도 계속 중인 사건의 재판업무 중 핵심영역에 해당해 피고인에게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고, 최 재판장이 재판부 합의를 거쳐 판결서의 양형이유 부분을 수정하는 방식으로 재판권을 행사해 이에 대한 현실적 방해는 없었다"며 "수정된 양형이유는 선고 당시 고지한 양형이유와 내용상 크게 다르지 않아 최 재판장의 권리행사를 방해하거나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 야구선수 도박죄 약식명령 공판절차회부 관련 사건 = 검찰은 "피고인이 2016년 1월 유명 프로야구 선수에 대한 도박죄 약식명령청구 사건이 공판절차로 회부됐다는 보고를 받은 뒤 담당 실무관으로 하여금 그 후속절차를 보류시키고, 재판사무 시스템에 입력된 공판절차회부 통지서 등을 삭제토록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당시 김모 판사를 불러 '주변 판사들 의견을 더 들어본 후에 처리하는 게 좋겠다'고 해 김 판사가 공판절차회부 결정을 번복하고 벌금 10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발령토록 했다"며 "피고인은 김 판사에게 '공판절차회부서가 등록된 것은 담당 실무관의 착오입력 때문'이라는 식으로 대응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항소심은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에게 일반적 직무권한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특히 "언론대응 시 김 판사에게 특정 방식으로 대응하게 했더라도 피고인이 담당 과장으로부터 보고받은 것을 그대로 알려준 것에 불과해 권한남용 행위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김 판사가 동료 판사들에게 의견을 구한 뒤 자체적으로 공판절차에 회부하기로 한 판단을 번복한 것이고, 재판권 행사에 대한 현실적 방해는 없었다"며 "피고인이 당시 보고받은 것에 따라 특정 방식으로 대응하게 한 것도 직무수행 과정에서 준수해야 할 원칙과 기준 등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 "직권남용죄 구성요건 심사 마치기도 전에 '위헌적 행위' 표현은 부적절" = 앞서 1심은 지난해 2월 "법관 독립 원칙상 법원장에게 재판업무를 지휘·감독할 사법행정권은 없다"면서 "당시 수석부장판사였던 피고인이 법원장의 사법행정권을 대행했다거나 법원장으로부터 구체적 위임을 받았다고 인정할 증거도 없어 일반적 직무권한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피고인의 행위는 구체적인 특정 사건의 재판 내용이나 결과를 유도하고, 절차 진행에 간섭한 것이기에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지만, 이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볼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이날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재판관여 행위를 두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관한 심사를 마치기도 전에 미리 '위헌적 행위'라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며 "1심처럼 피고인의 행위를 '위헌적 행위'라고까지는 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임 전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제 행위로 재판권 행사가 방해된 적이 없다는 것을 1심에 이어 항소심도 밝혀준 점에 대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며 "그러나 저로 인해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송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탄핵심판과 관련해 "사법절차가 다 마무리 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사법부나 헌법재판소에 예의가 아니다"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