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의 주요 증인이 외국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법정진술이 아닌 서면진술을 하게 하고 이를 증거로 삼아 재판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거주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와 국제형사사법공조조약을 체결한 국가라면 현지 법원에 사법공조를 요청하는 등 법정진술을 받기 위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시도해야 한다는 취지다. 형사재판의 대원칙인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판결로 보인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호주 교민 A씨에게 시민권을 만들어 주겠다고 속여 1억여원을 가로챈 혐의(사기 및 위조사문서행사 등)로 기소된 무역업자 허모(57)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15도17115).
형사소송법 제314조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진술을 요하는 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그 밖에 이에 준하는 사유로 인하여 진술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조서 및 그 밖의 서류를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면서도 단서에서 '다만, 그 진술 또는 작성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한다'고 하고 있다.
재판부는 "진술을 요하는 자가 외국에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수사기관이 진술자의 외국거주 여부와 장래 출국 가능성 등을 확인하고 출국이 불가능한 사정까지 증명했어야 예외적으로 진술서류를 증거로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원심은 주요 증인인 A씨가 호주에 거주하고 있고 비자 문제로 한국에 일시 귀국할 수 없다는 이유로 A씨를 법정에 직접 부르는 대신 A씨가 작성한 진술서를 증거로 채택한 뒤 이를 기초로 허씨에게 유죄판결을 내렸지만 이는 잘못"이라며 "우리나라와 호주 사이에 국제형사사법공조조약이 체결되어 있는 이상 우선 사법공조절차에 따라 증인을 소환할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해 봐야 하고, 소환을 할 수 없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외국의 법원에 사법공조로 증인신문을 실시하도록 요청하는 등의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이 같은 절차를 전혀 시도해 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진술을 요하는 자를 법정에 출석하게 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허씨는 2008년 4월 호주 시드니에서 A씨에게 "당신과 가족들의 호주 시민권을 발급해주겠다"고 속여 1억여원을 받은 다음 2009년 1월 위조된 시민권 증서를 A씨에게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허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증인으로 선정된 A씨는 비자 문제로 한국 방문이 불가능하다며 서면진술했다. 1,2심은 서면진술을 증거로 해 허씨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