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 기간에 자신이 이사로 있는 회사 명의로 수십억원대의 용역을 수행한 영화감독에 대해 영화제작사가 감독계약을 해제한 것은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영화감독이 계약상 요구되는 전념의무 내지 겸직금지의무를 위반했다는 취지다.
서울고법 민사34부(재판장 장석조 부장판사)는 영화감독 A씨가 B영화사를 상대로 낸 감독계약 유효 확인소송(2018나2033334)에서 최근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A씨는 2016년 4월 영화제작사 B사와 감독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날이 가도 남자주인공 캐스팅이 이뤄지지 않는 등 영화 제작에 차질이 생기기 시작했다. B사는 남자주인공 캐스팅을 위해 A씨에게 시나리오 각색 등을 요구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그러자 B사는 "A씨는 우리가 제안한 배우의 출연계약을 반대하고 시나리오 각색 요구에도 성실하게 응하지 않는 등 제작 준비를 게을리했다"면서 같은해 9월 A씨에게 불완전한 용역 제공 등을 이유로 고용계약을 해제한다고 알렸다. 이에 반발한 A씨는 지난해 7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영화는 특성상 상상력을 모아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상상력의 출발점인 감독의 역할은 매우 크고 중요하다"며 "이 때문에 감독계약을 체결하는 제작사는 감독에게 감독계약기간 동안 제3자에게 용역을 제공하지 말 것을 계약조항으로 명시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감독이 해당 영화가 아닌 제3자에게 용역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 한국 영화계의 통상적인 관례"라고 밝혔다.
이어 "이 사건 계약에서도 관련 내용을 명시적으로 정하고 있다"며 "A씨와 B사가 체결한 감독계약 제6조 3항에서 정한 겸직금지의무는 제6조 1항에서 정한 '한국 영화계에서 관례적으로 제공하는 모든 용역을 제공할 의무'의 내용을 절차적인 측면에서 예시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해석함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실질적으로 A씨의 1인 회사인 C사가 2016년 4월경부터 같은해 9월경까지 제3자에게 제공한 용역의 공급가액 21억원은 B사와 체결한 A씨 보수의 20배가 넘는데도, B사 측은 항소심에 이르기까지 A씨로부터 C사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고지받은 적이 없다"며 "이 같은 점을 볼 때 A씨는 B사와의 감독계약에서 정한 겸직금지의무 또는 전념의무를 명백히 위반함으로써 계약상 의무를 위반했거나 완전하게 이행하지 않았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앞서 1심은 "B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A씨가 감독계약에서 정하고 있는 의무를 불의행했다거나 의무이행을 거절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손을 들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