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서울 모 대학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에 온 독일인 A씨는 국기원의 태권도 승단 심사에 응시했다가 낭패를 봤다. 사연은 이렇다.
태권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종주국인 한국에 온 김에 제대로 된 수련을 받기 위해 대학 근처 B태권도장에 들렀다가 관장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태권도 공인 1단 자격을 갖고 있던 A씨에게 관장이 "수련비 70만원을 내면 2개월 안에 2단을 딸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 한 것이다. A씨는 곧바로 도장에 등록해 2단 승단 심사를 위한 수련에 들어갔다. 관장은 A씨를 대신해 태권도협회를 거쳐 국기원에 A씨의 승단심사를 신청했다. A씨는 같은해 10월 품새와 겨루기 등 승단심사에서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곧 단증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A씨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국기원과 태권도협회는 A씨가 한국에 온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아 단증을 발급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국기원 태권도 심사관리규정에 '응시자가 국적 이외의 제3국에서 응시하고자 할 경우 응시국가에서 6개월 이상 거주해야 한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화가 난 A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다. 그는 "2단 승단심사에서 합격점을 받고도 체류기간 미달로 단증을 발급해주지 않는 것은 신뢰 보호의 원칙을 위반해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8부(재판장 정은영 부장판사)는 A씨가 국기원과 태권도협회, B도장 관장 등을 상대로 낸 단증발급 청구소송(2015가합505477)에서 최근 원고패소 판결했다. 다만, 도장은 수련비를, 태권도협회는 승단심사 수수료를 A씨에게 돌려주라고 했다.
재판부는 "국기원의 태권도 심사관리규정은 외국인이 단지 단증을 발급받기 위해 극히 단기간만 한국에 입국해 단증을 딴 후 자국으로 돌아가 태권도 관련 사업을 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해외에서 태권도 사업을 하는 대한민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라며 "국기원은 태권도의 정신과 기술을 계승·발전시켜 태권도 문화 창달을 도모하는 단체로서 승단심사 등과 관련해 광범위한 재량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최소 체류기간으로 요구하는 6개월이 부당하게 길다고 볼 수 없으며 교환학생만 특별히 다르게 취급해야 할 이유도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A씨가 체류기간 미달로 단증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었음에도 확인을 게을리하고 수련비를 받은 관장에게는 불법행위 책임이 있고, 단증을 발급해 줄 수 없으면서도 응시 수수료를 받은 태권도협회도 부당이득반환 의무가 있다"며 "관장은 70만원의 수련비를 돌려주고 태권도협회는 응시 수수료 5만원을 A씨에게 환급하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