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사건과 관련없는 장면을 자료화면으로 사용했더라도 시청자에게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이 마치 그 사건의 관계인인 것처럼 오인할 수 있도록 했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패션모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우승한 뒤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모델 A씨는 2014년 9월 문화방송(MBC)이 방영한 모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보다 깜짝 놀랐다. 해당 프로그램은 당시 배우 이병헌씨를 협박한 혐의로 검찰에서 조사를 받던 걸그룹 소속 가수와 모델 사건을 보도하면서 A씨가 등장하는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내보낸 것이다. 영상은 6초 분량이었는데 2초는 패션쇼 전체 영상이었지만, 나머지 4초는 '또 다른 피의자는 모델 A양'이라는 자막과 함께 모자이크 된 신씨의 얼굴 등이 단독으로 나오는 장면이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긴 했지만 A씨라는 것을 알아보기 어렵지 않은 수준이었다. 방송 이후 지인과 기자들로부터 연락이 빗발친 A씨는 한동안 "나는 사건과 관계가 없다"는 해명을 하느라 곤혹을 치렀다. A씨는 이후 MBC와 해당 프로그램 제작사인 B사를 상대로 정정보도와 함께 위자료 1억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프로그램 첫머리에 정정보도문을 내보내고 A씨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2심은 "MBC는 A씨가 나오는 영상을 방송하며 좌측 상단에 '자료화면'이라고 표시하고 얼굴도 모자이크 처리했다"며 "방송이 A씨를 특정해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원고패소 판결했다. 대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민사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A씨(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평 이공현·김선국·최승수 변호사)가 MBC와 B사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청구 등 소송(2015다252969)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최근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화면에 '자료화면'이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글씨가 작아 오히려 화면 아래쪽에 큰 글자로 표시돼 있던 '또 다른 피의자는 모델 A양'이라는 자막이 훨씬 더 눈에 잘 띈다"며 "시청자 입장에서는 사건과 상관없는 일반적인 모델 선발대회 영상이라기보다는 아직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특정 피의자에 관한 과거 영상자료라고 받아들일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
이어 "TV 방송 보도의 경우 특정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 여부는 그 보도의 객관적인 내용과 아울러 일반 시청자가 보통의 주의로 방송보도를 접하는 방법을 전제로 보도내용의 전체적인 흐름 등 그 보도내용이 시청자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며 "문제의 방송이 A씨에 관한 진실하지 않은 사실적 주장 또는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를 했으므로 A씨는 정정보도와 명예훼손으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