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를 거듭하는 검찰의 관행에 대법원이 판결을 통해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의 이같은 조치는 국회의 형사소송법 개정 움직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울산자매 살인사건'의 피고인 김홍일(27)에 대한 검찰의 상고(2013도6219)를 기각하며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의 양형이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거나 채증법칙을 위반했다는 검사의 상고 이유는 대법원 판례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지난 1962년 4월 "61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이 사실오인이나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상고를 중형이 선고된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한 것은 중형이 선고된 피고인에게 최후의 구제의 길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검사가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하기 위한 이유로서는 상고할 수 없다"고 판결(62도32)한 이후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검사의 상고를 배척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이 최근 사회적으로 비난 여론이 높은 강력범죄 사건에서 피고인에 대한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를 하는 사례가 빈발하자 일종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피고인에 대해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이 선고된 경우에도 형사소송법 해석상 검사는 원심의 양형이 가볍다는 사유를 상고 이유로 주장하거나 피고인의 이익에 반해 양형의 전제사실의 인정에 있어 원심에 채증법칙을 위반한 위법이 있다는 사유를 상고이유로 주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기존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법원이 과거 양형부당을 이유로 한 검찰의 상고에 대해 이유 설시 없이 단순히 '상고를 기각한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국민적 관심이 쏠리는 사건에서 검찰이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를 거듭하는 추세에서 대법원이 기존 입장을 명확히 재확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하급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통영 초등학생 살인사건'의 김점덕과 '수원 20대 여성 살인' 오원춘에 대한 사건에서도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했었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검사의 대법원 상고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중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50년 동안 확립된 대법원 판례를 변경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면서 법 개정에 대한 반대의사를 국회에 전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앞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박영선)는 지난 6월 20일 상고 주체를 피고인과 검사로 명문화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상정하고 논의를 거쳐 법안을 법안심사 1소위원회에 회부했다. 검사장 출신인 이한성(56·사법연수원 12기)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3월 발의한 이 개정안은 '검사 또는 피고인은 전항 각 호의 이유로 상고할 수 있다'는 항목을 추가했다.
법안을 심사한 임중호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항소심의 형이 가볍다는 이유로 검사의 상고를 인정할 경우 피고인의 이익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양형에 대한 법관의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피고인에게 불이익한 형 변경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입법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러한 법안에 학계와 재야 법조계는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반응이다.
이상원(53·21기)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현행 헌법이 제정된 이후 형사소송법 개정 방향이 피고인의 인권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는데, 최근 강력범죄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인해 이러한 조류가 바뀌려는 움직임이 보인다"며 "이번 형소법 개정안은 형사법 발전의 역사적 측면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민경한(55·19기)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도 "검찰이 1·2심에서 양형에 관해 충분히 다툴 수 있는데도 상고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대법원이 법률심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바람직하지 않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한 검찰 간부는 "형소법상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있는 주체에 대해 제한을 두고 있지 않은 만큼 검찰의 상고가 부당하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내세우고 있지만, 명문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판례라는 것 역시 법원의 입장일 뿐이므로 검찰이 상고를 통해 판례를 변경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