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촬영 범죄의 증거로 압수한 컴퓨터를 탐색하면서 변호인에게 참여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등 적법절차를 위반했더라도, 피고인(피의자)이 앞서 불참여 의사를 밝혔고 관련 범죄사실을 진술했다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해당 컴퓨터에서 찾은 몰카 동영상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사법정의에 반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최근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20도10729).
A씨는 2013~2019년 노래방 등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총 328회에 걸쳐 불법 동영상을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2019년 10월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영장에 따라 A씨의 집에서 컴퓨터 1대와 스마트폰 1대를 압수했다. A씨는 당시 원본반출확인서에 '본인은 디지털기기, 저장매체 봉인과정에 참여하여 봉인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였고, 봉인 해제, 복제본의 획득, 디지털기기·저장매체 또는 복제본에 대한 탐색·복제·출력과정에 참여할 수 있음을 고지받았으며, 위 과정에 참여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쓰고 서명했다. 이후 경찰 피의자 신문에서 A씨는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여성을 촬영했고, 이를 컴퓨터에 저장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의 컴퓨터에서 몰카 영상 다수를 발견했다. 그런데 경찰은 A씨의 변호인에게 컴퓨터 탐색 등에 관한 사전통지를 하지 않았고, 변호인은 관련 절차에 참여하지 못했다.
1심은 A씨의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영장을 집행한 수사기관이 압수절차를 위반했으므로 이에 수집된 증거들은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며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컴퓨터 등 압수물이 아닌 현장에서 확보한 피해자 32명에 대한 영상은 증거능력을 인정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법률에 정해진 절차에 따르지 않고 수집한 증거라는 이유만을 내세워 획일적으로 증거능력을 부정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 규명을 통한 정당한 형벌권의 실현이라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목표와 이념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원심에서 수사기관이 압수절차를 위반했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다만 수사기관의 절차 위반행위가 적법절차의 실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고, 오히려 증거능력을 배제하는 것이 적법절차의 원칙과 실체적 진실 규명의 조화를 도모하고 이를 통해 형사 사법 정의를 실현하려 한 취지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예외적인 경우라면 법원은 그 증거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컴퓨터를 압수하면서 A씨로부터 탐색·복제·출력과정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했고, 탐색 당시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불법 촬영 영상물이 저장되어 있다'는 A씨의 진술도 나온 상태였다"며 "이후 선정된 국선변호인이 수사기관에 영장의 집행 상황을 문의하거나 과정에의 참여를 요구한 바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수사기관은 영장 집행 과정에서 A씨가 몰카를 이용해 수백명에 이르는 피해자들의 신체를 촬영해 둔 영상물을 압수했고, A씨는 수사기관 및 법정에서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며 "영장에 따른 압수수색을 통해 수집된 증거들을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단정한 원심은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