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출제 오류에 해당해 정답을 취소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재판장 이주영 부장판사)는 15일 A씨 등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 수험생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낸 정답결정처분 취소소송(2021구합86979)에서 원고승소 판결했다.
지난달 18일 치러진 수능 생명과학Ⅱ 20번 문제는 집단 Ⅰ과 Ⅱ 중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이 유지되는 집단을 찾고, 보기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평가하는 문항이다. 이에 대해 일부 수험생들은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오류가 발생해 문항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평가원은 지난달 29일 '이상 없음' 결론을 내렸고, 이에 반발한 일부 수험생들은 평가원을 상대로 정답결정 처분 취소소송과 집행정지를 제기·신청했다. 앞서 재판부는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선 "해당 문제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처분을 본안 판결 선고시까지 정지한다"며 일부인용 결정(2021아13203)했고, 이에 따라 생명과학Ⅱ 과목의 성적 통보가 미뤄졌다.
재판부는 해당 문제에 명백한 오류가 있다며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수능시험의 과학탐구 영역은 문제에 포함된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추리·분석·탐구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므로, 출제자는 수험생들의 논리성·합리성을 갖춘 풀이방법을 수립해 문제해결을 시도할 경우 정답을 고를 수 있도록 문제를 구성해야 한다"며 "A씨 등을 포함한 일부 수험생들은 평가원이 의도한 풀이방법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논리성·합리성을 가진 풀이방법을 수립해 문제의 해결을 시도했고, 그 과정에서 문제 자체의 오류로 인해 정답을 선택할 수 없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상황에서 수험생들에게 해당 문제 정답을 5번으로 선택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문제에 명시된 조건의 일부를 무시하거나, 생명과학 원리를 무시한 채 답항을 고르라는 것과 다름 없어 부당하다"며 "정답을 5번으로 선택한 그렇지 않은 수험생들 사이에 유의미한 수학능력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결국 해당 문제는 대학교육 수학능력 측정을 위한 수능시험 문제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해당 문제의 정답을 5번으로 유지한다면, 수험생들은 앞으로 수능시험 과학탐구 영역에서 과학 원리에 어긋나는 오류를 발견하더라도 그러한 오류가 출제자의 실수인지 의도된 것인지 불필요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며 "수능시험을 준비하면서 사고력과 창의성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출제자가 의도한 특정 풀이방법을 찾는 것에만 초점을 두게 될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해당 문제는 명백한 오류가 있고, 수험생들로 하여금 정답항의 선택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적어도 심각한 장애를 줄 정도에 이른다"며 "평가지표로서의 유효성을 상실했는데도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평가원의 처분은 위법해 이를 취소한다"고 판시했다.
한편, 재판부는 당초 오는 17일로 예정된 선고기일을 이날로 앞당겼다. 각 대학 입학전형 일정이 일부 변경되고 합격자 발표가 임박한 상황에서 판결을 조기에 선고해 학사일정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지난 10일 수능 성적 발표일에 공란으로 표시된 생명과학Ⅱ 과목의 성적은 이날 오후 6시부터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