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제3부 판결
【사건】 2020도12861 명예훼손
【피고인】 고AA
【상고인】 피고인 및 검사
【변호인】 변호사 우인식
【원심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0. 8. 27. 선고 2018노2672 판결
【판결선고】 2021. 9. 16.
【주문】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환송한다.
【이유】
상고이유를 판단한다.
1. 사안의 개요
가. 공소사실의 요지
사실 피해자 문재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으로 관련 피고인들이 1982. 10. 26.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되었다가 그중 일부 피고인들이 2012. 8. 23. 재심을 청구하여 2014. 9. 25.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된 일명 ‘부림사건’과 관련하여, 그 원사건의 변호인으로 관여한 바 없고, 불법 체포·감금에 의한 허위 자백 등을 이유로 한 일부 재심사건을 변호하였을 뿐이며, 2003년경 청와대 비서실 민정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피고인이 위 ‘부림사건’의 담당 검사였다는 이유로 당시 검사장이던 피고인의 인사에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거나 불이익을 준 사실이 없고, 사유재산제도 부정, 생산수단의 사회 구성원 공유 등 공산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주장하거나 북한의 체제 또는 주의·주장을 지지·추종하는 등 소위 ‘공산주의자’로 볼 만한 발언이나 활동을 한 사실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은 2013. 1. 4. 서울 ○구 ○○○로 ***(○○로*가) 한국○○○센터 국제회의장에서 개최된 ‘애국시민사회진영 신년하례회’에 ‘국가정상화 추진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하여 약 400여 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신년 인사말을 하면서, ‘피해자는 부림사건의 변호인으로서 체제전복을 위한 활동을 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을 변호하면서 그들과 동조하여 그들과 동일하게 체제전복과 헌법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활동인 공산주의 활동 내지 공산주의 운동을 해 왔고, 청와대 민정수석 및 비서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공안검사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피해자와 반대되는 활동을 하여 온 피고인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피고인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공정치 못한 인사를 하였다’는 취지의 발언을 함으로써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하여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나. 원심의 판단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해자는 부림사건의 변호인으로서 체제전복을 위한 활동을 한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들을 변호하면서 그들과 동조하여 그들과 동일하게 체제전복과 헌법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활동인 공산주의 활동 내지 공산주의 운동을 해 왔다’는 취지의 피고인의 발언(이하 ‘공산주의자 발언’이라 한다) 부분에 대하여,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의 이 부분 발언이 그릇된 사실을 근거로 한 비약적 논리전개를 통해 전체적으로 허위성이 인정되는 사실 적시에 해당하고 그에 대한 피고인의 고의도 인정되며 피해자를 과격한 공산주의자로 표현한 것은 피해자의 정치적·도덕적 이미지에 중대한 타격을 입히는 행위로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한 위법한 행위로 보아, 유죄로 판단하였다.
한편 이 사건 공소사실 중 ‘피해자가 청와대 민정수석 및 비서실장으로 재직할 당시 공안검사로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피해자와 반대되는 활동을 하여 온 피고인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피고인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방법으로 공정치 못한 인사를 하였다’는 취지의 피고인의 발언(이하 ‘인사불이익 발언’이라 한다) 부분에 대하여,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의 이 부분 발언이 인사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불만을 표출한 것이라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명예훼손죄를 구성할 만큼의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하였다.
2. 피고인의 상고이유에 관하여
가. 관련 법리
1) 표현의 자유는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며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헌법상 기본권이다(헌법재판소 1992. 2. 25. 선고 89헌가104 결정 참조). 서로 다른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는 것은 민주주의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다양한 의견은 창의성의 발현이며, 잘 차려진 풍요로운 밥상과 같다. 다양성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요체이고, 비판이나 불이익을 무릅쓰고 자기의 의견을 고집하는 것도 허용되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2) 명예훼손죄의 구성요건인 ‘사실의 적시’는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의견표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서 사실의 적시행위는 시간, 공간적으로 구체적인 과거 또는 현재의 사실관계에 관한 보고 내지 진술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의 표현내용이 증거에 의해 증명 가능한 것을 가리킨다(대법원 1998. 3. 24. 선고 97도2956 판결 참조). 어느 표현이 주체와 행위를 지적하여 일견 의견 또는 논평을 표명함과 동시에 그의 전제가 되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보이는 경우라도 그 표현의 전후 문맥과 그 표현이 이루어진 당시의 상황을 종합하여 볼 때, 그 표현이 비유적, 상상적이어서 다의적이고 구체적 내용, 일시, 장소, 목적, 방법 등이 불특정되어 일반적으로 수용될 핵심적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독자에 따라 달리 볼 여지가 있는 등으로 입장표명이라는 요소가 결정적이라면 그 표현은 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는 없고 의견 또는 평가의 표명이라 할 것이다(대법원 2004. 2. 26. 선고 99도5190 판결 참조).
사람이나 단체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외부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정치적 이념의 성질상 그들이 어떠한 이념을 가지고 있는지를 정확히 증명해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 37531 판결 참조). 공방의 대상으로 된 좌와 우의 이념문제 등은 국가의 운명과 이에 따른 국민 개개인의 존재양식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쟁점이고 이 논쟁에는 필연적으로 평가적인 요소가 수반되는 특성이 있으므로(대법원 2002. 12. 24. 선고 2000다14613 판결 등 참조), 정치적 이념에 관한 논쟁이나 토론에 법원이 직접 개입하여 사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이념은 사실문제이기는 하지만, 많은 경우 의견과 섞여 있어 논쟁과 평가 없이는 이에 대해 판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대법원 2018. 10. 30. 선고 2014다61654 전원합의체 판결 참조).
3) 공론의 장에 나선 전면적 공적 인물의 경우에는 비판과 의혹의 제기를 감수해야 하고, 그러한 비판과 의혹에 대해서는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서 이를 극복해야 하며, 공적 관심사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중요한 헌법상 권리로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 따라서 공적 인물과 관련된 공적 관심사에 관하여 의혹을 제기하는 형태의 표현행위에 대해서는 일반인에 대한 경우와 달리 암시에 의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 공개적인 발언으로 인한 명예훼손죄 성립 여부가 문제 되는 경우 발언으로 인한 피해자가 공적 인물인지 사적 인물인지, 발언이 공적인 관심사안에 관한 것인지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에 관한 것인지, 발언이 객관적으로 국민이 알아야 할 공공성이나 사회성을 갖춘 사안에 관한 것으로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닌지 등을 따져보아 공적 인물에 대한 공적 관심사안과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사안 사이에 심사기준의 차이를 두어야 한다. 문제된 표현이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경우에는 표현의 자유보다 명예의 보호라는 인격권이 우선할 수 있으나, 공공적·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경우에는 이와 달리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어야 한다(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6도14995 판결 참조).
나. 원심판결과 기록에 의하면 알 수 있는 사실들을 앞서 본 법리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의 공산주의자 발언은 피고인의 경험을 통한 피해자의 사상 또는 이념에 대한 피고인의 의견 내지 입장표명으로 봄이 타당하고, 이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인 사실의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한 위법한 행위라고 볼 수도 없다.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피해자는 부림사건의 재심 변호인이었음에도 공산주의자 발언에는 사실과 달리 피해자가 부림사건의 재심이 아닌 원사건의 변호인이었다는 발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부림사건의 변호인이었다는 사실이 피해자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저하시키는 내용으로 볼 수 없으므로, 공산주의자 발언에 사실과 달리 피해자가 부림사건 원사건의 변호인이라는 취지의 발언이 포함되었더라도 이러한 발언이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라고 볼 수 없다.
2) 피고인의 공산주의자 발언은 ‘피해자는 부림사건 변호인이자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에서 근무한 사람으로서 공산주의자이다. 피해자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는 공산주의가 된다고 확신하였다’는 취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가) 먼저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의 의미에 관하여 본다. ‘공산주의자’의 사전적 의미는 ‘사유재산제도의 부정과 공유재산제도의 실현으로 빈부의 차를 없애려는 사상을 가진 사람’이고, 여기서 ‘사상’이란 ‘판단, 추리를 거쳐서 생긴 생각의 내용’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느 한 개인이 공산주의자인지 여부는 그 개념의 속성상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고, 공산주의자로서의 객관적·구체적 징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닌 이상, 그에 대한 평가는 필연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상대적이어서 일반적으로 증거에 의하여 증명이 가능하다거나 시간적·공간적으로 특정되는 과거 또는 현재의 구체적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다.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자’는 북한과 연관 지어 사용되기도 한다. 북한의 정치인, 북한 정권과 내통하는 사람 등 북한과 긴밀하게 연관된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고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사람, 북한 정권에 유화적인 정책을 주장하는 사람을 지칭하기도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개개인마다 정치적 이념에 따른 견해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한민국헌법의 기본원리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한 북한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이 북한과 연관 지어 사용되더라도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할 수 있는 다른 구체적인 사정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이상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라고 쉽사리 단정할 수 없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전체적인 발언의 형식과 내용, 시기와 장소, 대상 등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이 피해자를 ‘공산주의자’라고 지칭한 것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사유재산제도 부정, 생산수단의 사회 구성원 공유 등 공산주의 체제의 핵심적인 내용들을 주장하거나 북한의 체제 또는 주의·주장을 지지·추종하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공산주의자로 지칭하였더라도 이를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라고 보기 어렵다.
나) 다음 ‘피해자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공산주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는 취지의 발언에 관하여 본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의 전체적인 발언 내용, 발언 장소, 시기, 발언 대상, 형식 등을 종합하여 보면, 위 발언은 피고인이 피해자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평가와 더불어 피해자가 대통령이 될 경우 예상되는 정치적 상황에 대해 개인적인 견해를 축약적으로 밝힌 것에 불과하다. 이 역시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할만한 구체적 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
3) 어떤 표현이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관한 것인 경우, 그 공적인 존재가 가진 국가·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하게 문제제기가 허용되어야 하고 공개토론을 받아야 한다. 정확한 논증이나 공적인 판단이 내려지기 전이라 하여 그에 대한 의혹의 제기가 공적 존재의 명예보호라는 이름으로 봉쇄되어서는 안 되고, 찬반토론을 통한 경쟁과정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 민주적이다(대법원 2002. 1. 22. 선고 2000다37524, 37531 판결 참조).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박근혜 후보가 승리하였음을 자축하는 정치적인 모임에서 대부분 피고인과 입장을 같이 하는 청중들을 상대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과거 오랜 기간 공안검사로 일해 왔던 경험을 토대로 야당 대통령후보였던 피해자의 정치적 이념이나 행보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앞서 본 공산주의자 발언을 하게 되었다. 위와 같은 피고인의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인해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나 정치적 입지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앞서 본 바와 같은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이러한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당부의 판단은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국민들이 서로 자유로운 의사교환을 통해 상호 검증과 논박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부분이다.
결국 이 사건 피고인의 행위는 공적 인물인 피해자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의견교환과 논쟁을 통한 검증과정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이를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하여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하였다고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다. 그럼에도 원심은 이 사건 공소사실 중 공산주의자 발언 부분에 대해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으로 유죄로 판단하였다. 이러한 원심의 판단에는 명예훼손죄의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고, 이를 지적하는 취지의 피고인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3. 검사의 상고이유에 관하여
원심판결 이유를 관련 법리와 기록에 비추어 살펴보면, 이 사건 인사불이익 발언 부분에 대한 원심의 판단에 논리와 경험의 법칙을 위반하여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명예훼손죄에서의 사실의 적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
4. 파기의 범위
위와 같은 이유로 원심판결 중 유죄 부분은 파기되어야 한다. 그런데 위 파기 부분은 원심이 이유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과 일죄의 관계에 있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되어야 한다.
5. 결론
그러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하여, 관여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대법관 이흥구(재판장), 김재형, 안철상(주심), 노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