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관의 피의자 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이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 행사를 권유한 것은 정당한 변호활동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진술거부권 고지가 수사방해에 해당한다'며 변호인을 강제로 끌어낸 것은 위법하다는 변호인의 주장을 받아들여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대법원 민사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지난달 27일 장경욱(46·사법연수원 29기) 변호사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2014다44574)에서 "국가는 장 변호사에게 2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2006년 10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돼 국가정보원에서 조사를 받던 중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에서 조사가 계속되자 장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장 변호사는 같은 해 11월 A씨에 대한 피의자신문에 참여했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대검찰청 예규 형식의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 운영지침'을 근거로 장 변호사에게 A씨 뒤편 대각선 1.5m 정도에 위치한 좌석에 앉을 것을 요구했고, 피의자신문 내용을 메모하는 것도 제지했다. 장 변호사는 수사관들과 언쟁 끝에 A씨의 약간 뒤편에 앉을 수 있었고 피의자신문 내용도 메모할 수 있었다.
신문 과정에서 장 변호사는 A씨에게 진술을 거부하라고 조언했고, 수사관들은 장 변호사에게 진술거부권 행사 권유가 수사 방해라며 항의했다. 장 변호사가 진술거부권 권유는 적법한 것이라고 항변하자 수사관은 장 변호사에게 퇴거를 명했다. 장 변호사가 불응하자 수사관들은 장 변호사를 조사실에서 강제로 끌어냈다. 장 변호사는 국가를 상대로 1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피의자신문에 참여한 변호인은 피의자가 조력을 먼저 요청하지 않은 경우에도 그 의사에 반하지 않는 한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능동적으로 수사기관의 신문 방법이나 내용에 대해 적절한 방법으로 제기하거나 피의자에게 진술거부권 행사를 조언할 수 있다"며 "변호인이 수사 방법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고 진술거부권 행사를 권유한 행위를 두고 신문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평가할 수는 없고, 피의자의 변호인으로서 정당한 직무수행 중에 있던 장 변호사에 대해 조사실 밖으로 끌어낸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의 행위는 변호사의 직업수행의 자유, 신체의 자유와 인격권을 침해한 위법행위에 해당한다"며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은 "변호인의 구속된 피고인 또는 피의자와의 접견교통권은 피고인 또는 피의자 자신이 가지는 변호인과의 접견교통권과는 성질을 달리하는 것으로서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고 할 수 없고 형사소송법 제34조에 의해 비로소 보장되는 권리이지만, 신체구속을 당한 피고인 또는 피의자의 인권보장과 방어권행사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권리"라며 "수사기관의 처분으로 이를 제한할 수 없고 법령에 의해서만 제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권은 변호인의 접견교통권의 한 내용을 이루는 권리로서 변호사라는 전문직업인의 양심과 정의, 직업상 윤리적 요소가 가미된 인격체로서의 변호사 개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며 "이는 인격적 법익의 하나로 평가받기 충분하고, 국가정보원 수사관들이 장 변호사를 퇴거시킨 행위 자체로 이미 장 변호사의 피의자신문 참여권과 직업수행의 자유, 신체의 자유, 인격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