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제23형사부 판결
【사건】 2014재고합13 국가보안법위반
【피고인】 1. 망 최01, 2. 망 최02
【재심청구인】 1. 피고인 망 최01의 자 최03, 2. 피고인 망 최02의 자 최04
【검사】 정형근(기소), 허성환, 추혜윤(공판)
【변호인】 법무법인 지평(피고인들을 위하여), 담당변호사 민창욱, 김승현
【재심대상판결】 서울형사지방법원 1983. 3. 15. 선고 82고합1086 판결
【판결선고】2017. 6. 29.
【주문】
피고인들은 각 무죄.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이유】
1. 공소사실
가. 별지 공소사실 기재와 같다.
나. 이 사건 공소장에는 별지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피고인들이 1958. 4.경 최05을 만나 간첩으로 포섭되어 북한의 지령을 받아 1977. 5.경까지 지속적으로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여 왔다는 일련의 사실관계가 기재되어 있다. 이와 관련하여, 검사는 재심 대상사건의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83노971 사건의 제2차 공판기일에서 이 사건 공소장에 기재된 사실 중 공소제기일인 1982. 11. 11.을 기준으로 15년의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은 부분만 공소사실에 포함된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는 별지 공소사실 중 검사가 공소 제기의 대상으로 삼은 피고인 최01에 대한 1 내지 5항 기재 공소사실과, 피고인 최02에 대한 1 내지 3항 기재 공소사실의 인정여부만이 심판의 대상이 된다(이하 별지 공소사실 중 검사가 공소 제기의 대상으로 삼은 부분을 ‘이 사건 공소사실’이라고 한다).
2. 사건의 진행경과
가. 피고인들과 망 최06는 1982. 11. 11. 국가보안법위반의 공소사실로 서울형사지방법원 82고합1086호로 기소되었는데, 위 법원은 1983. 3. 15.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구 국가보안법(1980. 12. 31. 법률 제3318호로 전부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2조, 형법 제98조 제1항을 적용하여 피고인 최01에 대하여는 사형을, 피고인 최02에 대하여는 징역 15년 및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하였다(이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라 한다).1)
[각주1] 최06는 1982. 12. 14. 서울구치소에서 사망하였고, 위 법원은 1983. 3. 12. 최06에 대하여 공소기각결정을 하였다.
나.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피고인들과 검사가 각 항소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 1983. 6. 24. 선고 83노971 판결'로 피고인들과 검사의 항소가 모두 기각되었고, 이에 피고인들이 상고하였으나 ‘대법원 1983. 11. 8. 선고 83도1979 판결'로 상고가 기각되어 재심대상판결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다. 피고인 망 최01의 자 최03과 피고인 망 최02의 자 최04은 2014. 8. 18.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재심을 청구하였고, 이 법원은 2016. 8. 31.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에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서 정한 재심사유가 있다고 판단하여 재심개시결정을 하였다. 위 재심개시결정에 대하여 검사가 즉시 항고하였으나 서울고등법원 2016. 10. 17.자 2016로137 결정으로 즉시항고가 기각되었고, 위 재심개시결정은 그대로 확정되었다.
3. 재심청구인들의 주장 요지
가. 피고인 최01는 숙부인 최05을 따라 1959년과 1966년 두 차례 북한에 갔다 왔고, 1966. 9.과 12.에 남파된 간첩에게 숙박을 제공한 사실은 있으나,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하는 등 간첩활동을 한 사실은 없고, 1966년 이후로는 북한과 더 이상 접촉하지도 않았다. 피고인 최02 또한 1959년경 최05을 만나 북한의 전문수신 방법 등을 배운 사실이 있을 뿐이고, 간첩활동을 하거나 북한과 접촉한 사실이 없다.
나. 이 사건 공소사실은 치안본부 소속 대공분과 수사관 이07의 주도로 조작된 것이다. 이07을 비롯한 치안본부 소속 수사관들은 피고인들과 최06를 불법체포·감금한 후 이 사건에 대한 경찰 조사과정에서 피고인들과 최06에 대하여 폭행·가혹행위를 하였고, 피고인들과 최06는 수사기관의 고문과 협박을 이기지 못하고 수사기관이 조작한 사실관계를 인정하는 취지의 허위 자백을 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피고인들과 최06의 가족, 친지들 또한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이나 협박을 당하면서 진술을 강요당하였다. 이러한 피고인들, 최06 등의 진술은 위법수집증거이고, 임의성도 인정할 수 없어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그 밖의 증거들은 공소사실을 인정할 증거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으므로 피고인들에 대하여 무죄가 선고되어야 한다.
다. 이 사건 공소사실에 기재된 피고인들과 최06의 간첩활동은 마을 주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거나 쉽게 알 수 있는 공지의 사실을 탐지, 수집하였다는 것에 불과하므로, 그 내용 자체로도 간첩죄를 구성할 수 없다.
4. 검사가 신청한 증거들의 증거능력에 관한 판단
가. 관련 법리
재심개시의 결정이 확정된 사건에 대하여는 법원이 그 심급에 따라 다시 심판을 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438조 제1항). 제1심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심판절차에서 법원은 종전 소송절차의 증거를 그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증거신청, 당사자의 의견진술, 증거결정 및 증거조사의 실시 등 증거조사절차의 과정 전체를 새로이 진행한 후 증거능력이 인정되고 적법한 증거조사를 마친 것에 한해서 범죄사실을 인정할 증거로 삼을 수 있다(서울고등법원 2010. 3. 19. 선고 2009노3318 판결 참조).
나. 이 사건의 증거관계
피고인들에 대한 각 공소사실의 증명을 위하여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는 ① 피고인들에 대한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자술서, 확인서, ② 피고인들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③ 최06, 최08, 서09, 최10, 최11, 강12, 최13, 최14에 대한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자술서, ④ 최06, 최08, 서09, 최10, 최11, 최13, 최14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반성문, ⑤ 장15, 최16, 최17, 박18, 유19, 최20, 최21, 공22, 김23, 김24, 최25, 권26, 조27, 황28, 최29, 황30, 최31, 송32, 김33, 이34, 이35, 김36, 최37, 최38, 우39이 경찰에서 작성한 각 진술서, 서40, 김41, 최42, 최43, 두44, 김45, 김24, 최46, 김47, 박18, 유19, 최20, 김23, 김24, 황30, 최25, 최38, 우39에 대한 각 경찰 진술조서, 최46, 서48, 김41, 최42, 최43, 최13, 최16, 김49, 최50, 홍51, 박18, 최29, 유19, 김23, 최38, 최20, 최37, 조27, 황30, 김24, 최25, 우39에 대한 각 검찰 진술조서, ⑥ 경찰이 작성한 의견서, 동행보고, 각 압수조서 및 압수목록, 현장사진, 암호문건 및 발굴상황, 각 수사보고, 각 검거간첩기술신문보고, 실황조사결과보고, 각 수사지휘, 현장답사보고, 각 인지동행 보고, 무인포스트발굴보고, 각 답사보고, ⑦ 각 구속영장, 각 구속통지, 각 구속기간 연장결정, 지출증빙서, 치료환자사인 등 요청회답, 호적등본, 각 수사자료카드, 각 주민등록표, 각 신원보증서, 정보사범신병 처리 조정, 공안사범불기소처분승인, ⑧ 재심대상사건과 그 항소심, 상고심의 각 공판조서, 최13, 김49, 최46, 서40, 최38, 최37, 우39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 각 항소장, 각 항소이유서, 각 상고장, 각 구속영장, 각 변호인선임신고서, 사체검안서, 진정서, 병상조회신청, 병상조회, 병상조회회보, 탄원서, 피의자수용증명, 각 구속기간연장결정, 각 구속기간갱신결정이 있다.
다. 검사가 신청한 증거들의 증거능력 판단을 위한 전제사실
1) 피고인들, 최06에 대한 강제연행 및 불법구금
가) 피고인들이 연행될 당시의 구 형사소송법(1987. 11. 28. 법률 제3955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은 “수사기관이 피의자를 강제로 구인하거나 구금하기 위해서는 법관에 의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야 하고(제201조),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가 사형·무기 또는 장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피의자의 증거 인멸, 도망 또는 도망할 염려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긴급을 요하여 지방법원 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을 수 없을 때에는 그 사유를 고하고 영장 없이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으며(제206조), 이에 의하여 피의자를 구속한 경우 구속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지방법원 판사 있는 시 또는 군에서는 구속한 때로부터 48시간 이내에, 기타의 시 또는 군에는 72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의 발부를 받아야 한다(제207조)”고 규정하고 있다.
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관계와 그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 최01는 1982. 8. 14.경, 최06는 1982. 8. 22.경, 피고인 최02은 늦어도 1982. 9. 15.경 수사관들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된 후 1982. 9. 25.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불법구금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1) 최06, 서09, 최10와 피고인 최02은 경찰 수사과정에서 피고인 최01가 1982. 8. 14. 실종되어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이에 따라 가족들은 1982. 8. 16.경 경찰에 피고인 최01의 실종 사실을 신고하였다는 취지로 진술하였다.2) 또한, 최06에 대한 경찰 2회 피의자신문 과정에서 수사관은 최06에게 피고인 최01가 행방불명된 것이 아니라 당국에서 조사 중이라고 설명하였다.3) 피고인 최02에 대한 수사보고에도 1982. 8. 14. 23:00경 피고인 최01를 수사기관에서 검거 동행하였다고 기재되어 있다.4) 결국 위와 같은 진술들 및 수사보고의 기재를 종합하면 피고인 최01는 1982. 8. 14.경 수사기관에 검거되어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각주2] 수사기록 870 ~ 876쪽, 1392, 1433, 1514쪽, 2047쪽, 2098쪽. 위 수사기록의 쪽수는 재심대상사건의 해당 면수 이다. 이하 공판기록에 대하여도 같다.
[각주3] 수사기록 915쪽
[각주4] 수사기록 1370 ~ 1371쪽
(2) 국가안전기획부장이 1982. 9. 22. 치안본부장에게 보낸 ‘전언통신문(정보사범 신병처리조종)'에는 대공 2061.22~738(82. 8. 16.) 및 대공 2061.22~719(82. 9. 15.)로 통보한 최01 등 10명에 대하여 ‘최01, 최06, 최02은 구속수사, 최08은 불구속입건 활용, 최10, 최11, 강12, 서09, 최14, 최13은 불구속입건'하도록 처리조종한다고 기재되어 있다.5) 이에 비추어 보면, 대공분과 수사관들은 1982. 8. 16.경 혹은 늦어도 1982. 9. 15.경에는 피고인 최02에 대한 신병도 확보해놓은 상태에서 신병처리에 관하여 국가안전기획부에 통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하여, ① 피고인 최02이 1982. 9. 23. 작성한 첫 번째 자술서는 총 21쪽, 첫 번째 경찰 피의자신문조서는 총 74쪽에 이르는데, 위 자술서와 경찰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이미 이 사건 공소사실의 대부분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어 위 시점에는 피고인 최02에 대하여 이미 상당한 기간 동안 수사가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 점, ② 최06는 경찰에서 1982. 8. 21. 22:00경 집에 돌아와 처로부터 피고인들의 집에 경찰관이 잠복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최06 본인은 그 다음날 새벽에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연행되어 검거되었다고 진술하였던 점,6) ③ 최20은 경찰에서 1982. 9.초경 최06의 장남인 최52으로부터 피고인 최01가 행방불명되었고, 며칠전 최06와 피고인 최02이 다 잡혀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7)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 최02은 최06가 체포된 1982. 8. 22.을 전후로 그 무렵 최06와 함께 체포되었던 것으로 보이고, 늦어도 1982. 9. 15.경에는 체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각주5] 수사기록 2683쪽
[각주6] 수사기록 875~876쪽
[각주7] 수사기록 1103쪽
(3) 최06는 경찰에서 1982. 8. 21. 22:00경 고향집에 계신 어머니 서09에게 갔다 돌아와 처로부터 피고인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다음날 새벽에 담배를 사러 나갔다가 연행되어 검거되었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최06는 1982년 당시 전주 소재 남양초등학교의 교사였는데, 남양초등학교장이 발행한 최06의 경력증명서에는 최06가 1982. 9. 14. 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2 제2항8)을 사유로 직위해제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보면, 최06는 1982. 9. 14. 이전에 상당기간 구금되어 학교에 출근을 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위와 같이 직위가 해제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더하여 앞서 (2)항에서 본 ‘전언통신문(정보사범 신병처리조종)'의 기재내용과 최20의 경찰 진술 등을 종합하여 고려하면 최06는 1982. 8. 22.경에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각주8] 구 국가공무원법(1982. 12. 28. 법률 제358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73조의2 제2항은 직위해제 사유가 소멸한 이후에 다시 직위를 부여하도록 하는 규정이므로, 위 경력증명서에 기재된 ‘제73조의2 제2항'은 직무수행능력이 부족하거나 근무성적이 극히 불량한 자 또는 공무원으로서의 근무태도가 심히 불성실한 자에 대하여 직위를 해 제할 수 있도록 한 ‘제73조의2 제1항 제2호'의 오기인 것으로 보인다.
(4) 피고인들과 최06에 대하여 1982. 9. 25.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같은 날 집행되었는데, 수사기록에는 피고인들이 체포된 이후 구속영장이 발부되기까지 구금상태에서 벗어났다고 볼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고, 피고인들의 가족들 또한 피고인들이 최초 체포된 이후로 공판단계에까지 계속 구금되어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2) 피고인들, 최06에 대한 경찰의 고문, 폭행, 가혹행위이 법원
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 특히 최08의 법정진술, 최08, 최10, 최11이 이 법정에 작성·제출한 진술서 등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관계와 그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들과 최06는 경찰 수사과 정에서 고문과 폭행,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가) 피고인 최01는 재심대상사건의 1심 공판 과정에서 군사기밀을 제보, 누설한 사실이 없고 신문을 하는 사람이 그렇게 물어 그대로 대답하였을 뿐이라고 진술하였고,9) 상고이유서에서 대공반 및 수사과정에서 고문에 의하여 답변하였다고 진술하였다.10) 피고인 최02은 항소심 공판과정에서 너무 지나치게 조사를 하여 알아서 하라고 말했다고 진술하였고,11) 항소심에 제출한 탄원서에 심문 과정에서 억울한 일이 있었다는 취지로 기재하였다.12) 이처럼 피고인들은 재심대상사건의 제1심과 그 항소심, 상고심 공판 과정에서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고문으로 인하여 허위로 자백한 것이라는 취지로 거듭하여 진술하였고, 이 사건 재심대상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도 수사과정에서의 고문 등을 지적하면서 지속적으로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각주9] 공판기록 174쪽
[각주10] 공판기록 399쪽
[각주11] 공판기록 343쪽
[각주12] 공판기록 356쪽
나) 피고인들과 최06가 불법체포되어 구금된 며칠 후, 피고인 최01의 사촌동생인 최08, 피고인 최01의 딸 최10, 최11, 피고인 최02의 어머니 서09 등도 영장 없이 체포되어 일주일 이상 구금된 상태에서 경찰 조사를 받았다. 최08은 남영동 대공분실 지하층에서 이루어진 경찰 수사 과정에서 구타, 물고문, 전기고문, 잠 안재우기 등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수사관으로부터 최06의 자백과 동일한 취지로 진술할 것을 강요받았다. 최10와 최11 또한 수사관들의 협박에 시달리면서 며칠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자백을 강요받았고, 글씨를 잘 모르는 최10는 수사관들의 요구에 따라 미리 작성된 서면을 보고 그리다시피 베껴 자술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위 과정에서 최08, 최10, 최11은 피고인들과 최06가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거나 전해 들었다. 최08, 최10, 최11은 피의사실이 경미하여 불구속입건되었고 결국 기소 대상에서도 제외되었음에도 위와 같이 심한 고문과 가혹행위, 협박에 시달린 점에 비추어 보면, 주된 피의자로 입건되어 구속수사의 대상이 된 피고인들과 최06는 최소한 최08보다 더욱 심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하였을 것으로 넉넉히 추단된다.
라. 증거능력에 관한 구체적 판단
1) 피고인들에 대한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자술서, 확인서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과 그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들은 불법 구금된 상황에서 수사관으로부터 고문, 폭행, 가혹행위 등을 당하여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자백하는 진술을 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이러한 자백 진술이 기재된 피고인들에 대한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및 자술서는 위법수집증거이고 임의성도 인정할 수 없으며, 더구나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고 있으므로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 제309조, 제312조 제3항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
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피고인 최01는 1982. 8. 14.경, 피고인 최02은 늦어도 1982. 9. 15.경 영장 없이 체포되어 1982. 9. 25.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장기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를 받았고, 경찰 수사 과정에서 수사관들로부터 심한 고문과 폭행, 가혹행위를 당하였다.
나) 피고인 최01에 대하여는 1982. 9. 22.부터, 피고인 최02에 대하여는 1982. 9. 23.부터 수차례에 걸쳐 이 사건 공소사실을 모두 자백하는 취지의 자술서, 피의자신문조서 등이 작성되었다. 위 각 자술서, 피의자신문조서 등이 작성될 당시 피고인들은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상태였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기회 또한 얻지 못하였다.
다) 이 사건에서는 간첩 ‘장15'의 진술 외에는 다른 객관적인 증거 없이 오로지 피고인들의 진술에 의존하여 수사가 시작되었고, 그 후 확보하였다는 증거 역시 피고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최초 자술서를 작성할 당시부터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자백하면서, 조사 당시로부터 최소 10년, 길게는 20년 이상 이전에 벌어진 일들을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진술하는 등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였다.
또한, 피고인 최01는 경찰 조사 당시 1959년과 1966년 두차례에 걸쳐 입북하여 북 으로부터 주파수 1080사이클13)로 북한의 지령을 수신하라는 교육을 받았다고 진술하였다.14) 그런데 피고인 최01에 대한 검거간첩기술신문보고에 첨부된 지령수신카드에 의하면, 피고인 최01는 1960년경부터 1969년경까지 북한에서 교육받은 주파수와는 전혀 다른 주파수인 6250kc, 6195kc, 3300kc, 3320kc 등으로 북한의 지령을 수신 한 것으로 되어 있어15) 피고인 최01의 진술과는 부합하지 않고, 기록상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떠한 자료도 찾을 수 없다.
[각주13] 주파수 단위의 과거 표현법인 킬로사이클(kc)을 의미하고, 현재 주파수 단위인 킬로헤르츠(KHz)와 동일한 단위이다.
[각주14] 수사기록 166~167, 179, 247~251, 283쪽
[각주15] 수사기록 478~511쪽
뿐만 아니라, 피고인 최01는 경찰 조사 당시 1966년 입북하여 공작금 명목으로 한화 50만 원, 즉 1,000원 권으로 500매를 건네받아 돌아왔다고 진술하였는데,16) 한국은행 1,000원 권 지폐는 1975. 8. 14.에 처음 발행된 화폐이기 때문에 1966년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화폐였다. 그럼에도 피고인 최01는 자신에게 불리한 허위의 사실을 적극적으로 상세하게 진술하였다.
[각주16] 수사기록 294쪽
이처럼 피고인들의 경찰 진술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여러 의문 사항이 발견되고, 객관적 사실에도 반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관계와 사정이 이러하다면, 피고인들은 경찰에서 진술서를 작성하고 피의자로서 조사받을 당시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된 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 경찰관들의 고문과 가혹행위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음이 충분히 추단된다.
2) 피고인들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피고인이 검사 이전의 수사기관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하여 임의성 없는 자백을 하고 그 후 검사의 조사단계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어 동일한 내용의 자백을 하였다면 검사의 조사단계에서 고문 등 자백의 강요행위가 없었다고 하여도 검사 앞에서의 자백도 임의성 없는 자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대법원 1992. 11. 24. 선고 92도2409 판결 참조). 이러한 임의성에 다툼이 있을 때에는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해야 하고, 검사가 그 임의성의 의문점을 없애는 증명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그 진술증거는 증거능력이 부정된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4도 7900 판결 참조).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관계 와 그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피고인들은 검찰의 조사단계에서도 앞서 본 바와 같은 경찰에서의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된 가운데 경찰에서와 같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자백한 것으로 보이고, 달리 그러한 임의성에 관한 의문점을 해소할 만한 검사의 증명이 없다. 따라서 피고인들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역시 증거능력이 없다.
가) 피고인들은 1982. 10. 13. 검찰에 송치되었고, 피고인 최01는 6회에 걸쳐, 피고인 최02은 4회에 걸쳐 피의자신문을 받았다. 피고인들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경찰에서 자백한 내용을 거의 동일하게 진술하였는데, 심지어 앞에서 본 1,000원 권 지폐에 관한 허위 진술까지도 그대로 반복하였다.17) 이후 피고인들은 재심대상사건의 제1심과 그 항소심, 상고심에서 검찰에서의 자백을 포함하여 피고인들이 수사 단계에서 한 자백은 모두 고문과 가혹행위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는 취지로 일관하여 진술하였다.
[각주17] 수사기록 2398쪽
나) 최08은 대공분과에서 약 2주간 조사를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고, 이후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경찰에서 한 진술을 번복하고자 하였다. 그러자 담당 검사는 최08이 딴소리를 한다고 호통을 치면서 대공분과 수사관을 다시 불렀고, 자신을 고문한 수사관들이 온 것을 본 최08은 겁에 질려 검찰이 준비한 서류에 그대로 서명을 하고 돌아왔다. 당시 최08은 피고인 최02이 검사에게 조사를 받으면서 억울함을 호소하였으나 검사가 이를 묵살하며 호통을 치는 광경과 최06가 반쯤 넋이 나간 상태로 검사에게 조사를 받으면서 피의사실을 부인하자 검사실의 수사관이 우산대로 최06의 옆구리를 찌르고 눈을 찌를 듯이 협박하는 광경 등을 목격하였다.
3) 최06, 최08, 서09, 최10, 최11, 강12, 최13, 최14에 대한 각 경 찰 피의자신문조서, 자술서
가) 위 각 증거서류 중 피고인 최01의 간첩행위를 방조하였다는 등의 혐의로 입건되어 조사를 받은 서09, 최10, 최11, 강12에 대한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자술서와 최06, 최08, 최13, 최14에 대한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자술서는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재심개시결정 이후 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는 취지로 증거로 함에 부동의하거나(형사소송법 제312조 제3항, 제5항), 이를 증거로 함에 부동의하였으나, 원진술자가 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그 진정성립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 제5항)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
나) 또한,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최06, 최08, 서09, 최10, 최11은 영장 없이 체포되어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고문 또는 가혹행위를 당하면서 진술을 강요당한 사실이 인정된다. 따라서 최06, 최08, 서09, 최10, 최11에 대한 각 경찰 피의자신문조서 및 자술서는 위법수집증거이고, 임의성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이러한 측면에서도 증거능력이 없다.
4) 최06, 최08, 서09, 최10, 최11, 최13, 최14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 반성문
가) 위 각 증거서류에 대하여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재심개시결정 이후 이 법정에서 증거로 함에 부동의하였고, 원진술자가 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그 진정성립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 제5항), 위 각 증거서류는 증거 능력이 없다.
나)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최06, 최08, 서09, 최10, 최11은 경찰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로 인하여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하였는바, 기록상 그 후 검사의 조사단계에서도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계속되어 동일한 내용의 진술을 했던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달리 그러한 임의성에 관한 의문점을 해소할 만한 검사의 증명이 없다. 따라서 최06, 최08, 서09, 최10, 최11에 대한 각 검찰 피의자신문조서, 반성문은 이러한 측면에서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5) 장15, 최16, 최17, 박18, 유19, 최20, 최21, 공22, 김23, 김24, 최25, 권26, 조27, 황28, 최29, 황30, 최31, 송32, 김33, 이34, 이35, 김36, 최37, 최38, 우39이 경찰에서 작성한 각 진술서, 서40, 김41, 최42, 최43, 두44, 김45, 김24, 최46, 김47, 박18, 유19, 최20, 김23, 김24, 황30, 최25, 최38, 우39에 대한 각 경찰 진술조서, 최46, 서48, 김41, 최42, 최43, 최13, 최16, 김49, 최50, 홍51, 박18, 최29, 유19, 김23, 최38, 최20, 최37, 조27, 황30, 김24, 최25, 우39에 대한 각 검 찰 진술조서
위 각 증거서류에 대하여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재심개시결정 이후 이 법정에서 이들을 증거로 함에 부동의하였고, 원진술자가 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그 진정성립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형사소송법 제312조 제4항, 제5항), 위 각 증거서류는 증거능력이 없다.
6) 경찰이 작성한 의견서, 동행보고, 각 압수조서 및 압수목록, 현장사진, 암호문건 및 발굴상황, 각 수사보고, 각 검거간첩기술신문보고, 실황조사결과보고, 각 수사지휘, 현장답사보고, 각 인지동행보고, 무인포스트발굴보고, 각 답사보고
위 각 증거서류에 대하여는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재심개시결정 이후 이 법정에서 이들을 증거로 함에 부동의하였고, 작성자인 수사관들이 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여 그 진정성립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형사소송법 제312조 제6항), 위 각 증거서류는 증거능력이 없다.
7) 각 구속영장, 각 구속통지, 각 구속기간 연장결정, 지출증빙서, 치료환자사인 등 요청회답, 호적등본, 각 수사자료카드, 각 주민등록표, 각 신원보증서, 정보사범신병처리 조정, 공안사범불기 소처 분승인
위 각 증거서류에 대하여는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재심개시결정 이후 이를 증거로 함에 동의하였고, 달리 그 증거능력을 부인할 만한 사정이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8) 재심대상사건과 그 항소심, 상고심의 각 공판조서, 최13, 김49, 최46, 서40, 최38, 최37, 우39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 각 항소장, 각 항소이유서, 각 상고장, 각 구속영장, 각 변호인선임신고서, 사체검안서, 진정서, 병상조회신청, 병상조회, 병상조회회보, 탄원서, 피의자수용증명, 각 구속기간연장결정, 각 구속기간갱신결정
가) 위 각 증거서류 중 최13, 김49, 최46, 서40, 최38, 최37, 우39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와 검사가 작성한 항소이유서에 대하여는 피고인들의 변호인 이 재심개시결정 이후 이를 증거로 함에 부동의하였으나, 이들은 법원이 주재하는 절차에서 작성된 조서이거나 법원이 주재하는 절차에 제출된 문서로서 신용성이 정황적으로 강력하게 보장되는 문서이고, 그 작성자를 증인으로 소환하여 신문하는 것이 부 적당하거나 실익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15조 제3호에 따라 당연히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나) 위 각 증거서류 중 최13, 김49, 최46, 서40, 최38, 최37, 우39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와 검사가 작성한 항소이유서를 제외한 나머지 증거서류들은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재심개시결정 이후 이를 증거로 함에 동의하였고 달리 그 증거능력을 부인할 만한 사정이 없으므로 증거능력이 인정된다.
마. 소결
따라서 검사가 신청한 증거 중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것은 각 구속영장, 각 구속통지, 각 구속기간 연장결정, 지출증빙서, 치료환자사인 등 요청회답, 호적등본, 각 수사자료 카드, 각 주민등록표, 각 신원보증서, 정보사범신병 처리 조정, 공안사범불기소처분승인 및 재심대상사건과 그 항소심, 상고심의 각 공판조서, 최13, 김49, 최46, 서40, 최38, 최37, 우39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 각 항소장, 각 항소이유서, 각 상고장, 각 구속영장, 각 변호인선임신고서, 사체검안서, 진정서, 병상조회신청, 병상조회, 병상 조회회보, 탄원서, 피의자수용증명, 각 구속기간연장결정, 각 구속기간갱신결정이고, 나머지 증거는 모두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5. 이 사건 공소사실 인정 여부에 관한 판단
가. 이 사건 공소사실의 인정 여부는 검사가 신청한 증거 중 위와 같이 증거능력이 없는 증거를 제외한 나머지 각 증거(이하 ‘이 사건 각 증거'이라고 한다)에 의하여 이 사건 공소사실을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할 수 있는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
나. 이 법원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아래와 같은 사실 관계와 그로부터 추론할 수 있는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각 증거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증거가 되지 못하고, 이 사건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거나 단 지 피고인들의 자백에 대한 보강증거에 불과하다. 앞서 본 바와 같은 이유로 피고인들의 경찰 및 검찰에서의 자백 취지의 진술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는 이상 위 증거들만 으로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1) 피고인들은 재심대상사건의 1심과 그 항소심, 상고심 공판 과정에서 일관되게 수사기관에서 한 자백 취지의 진술은 자의가 아니라 고문, 폭행, 가혹행위 등에 의해 이루어진 타의에 의한 자백이라고 진술하면서 이 사건 공소사실을 부인하였다.
구체적으로 보면, 피고인 최01는 재심대상사건의 1심 공판기일에 ① 1958. 4.경 숙부인 최05이 찾아와 만나게 되었고, 1959. 5.경 재차 방문한 최05을 따라 입북하여 정치교육, 기술교육, 연락교육 등을 받은 후 집으로 돌아왔으며, ② 1966. 7.경 무장한 북한 안내원의 협박에 의해 다시 입북하여 8~9일간 각종 교육을 받고 돌아온 후 1966. 11.경과 12.경 두 차례에 걸쳐 여자 간첩에게 숙식 등 편의를 제공한 사실은 있으나, ③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최06와 피고인 최02을 간첩으로 포섭한 사실이 없고, ④ 1968. 6.경 마을 사람들과 생합잡이를 나간 적은 있으나 이를 가장하여 망해초소, 심포초소, 거천초소의 경비상황을 파악한 사실이 없으며, 1970. 4.경 중군봉 중턱 잔디밭에서 열린 마을 사람들의 소풍유람에 함께한 사실은 있으나 이를 기화로 고사초소의 경비상황을 탐지한 사실도 없고, 1977. 5.경 마을 사람들과 망해사로 구경을 간 적이 있으나 그 때 망해초소의 경비상황을 탐지한 사실이 없으며, ⑤ 1970. 4.경 및 1971. 10.경 피고인 최02으로부터 대간첩 비상훈련 내용, 고사초소 경비현황, 경찰의 부역자, 월북자 가족 동태 감시현황에 관한 보고를 받은 사실도 없고, ⑥ 상동역 부근에서 페니실린 병을 발굴하여 3분 능선 소재 김53 조상묘에 매몰한 시점은 공소사실에 적시된 1968. 6.경이 아니라 1966년 북한에서 돌아온 직후라고 공소사실을 전면 부 인하는 취지로 진술하였다.18)
[각주18] 공판기록 90~115쪽
다음으로 피고인 최02은 재심대상사건의 1심 공판기일에 ① 1958. 4.경 종조부인 최05을 만났고, 1959. 4.~5.경 재차 방문한 최05으로부터 북한의 우월성 등에 관한 설명을 듣고 북한의 지령 수신 방법 등에 관한 교육을 받은 후 일부 지령을 수신한 사실은 있으나, ② 1966. 8.경 입북하였다가 돌아온 피고인 최01에게 자수를 권유하였을 뿐, 달리 간첩으로 포섭된 사실은 없고, ③ 1970. 4.경 예비군 훈련을 가 고사초소에 배치된 적은 있으나 그곳 고사초소의 동태를 파악한 사실은 없으며, ④ 1970. 4.경 및 1971. 10.경 전봉지서 순경 우39을 만난 사실은 있지만, 위 우39으로부터 경찰의 부역자, 월북자 가족 동태 감시현황을 탐지하거나 그러한 탐지내용을 피고인 최01에게 보고한 사실도 없다고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하였다.19)
[각주19] 공판기록 115~126쪽
2) 나아가 최13, 김49, 최46, 서40, 최38, 최37, 우39에 대한 각 증인 신문조서에 대하여 보면, ① 증인 최13, 김49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의 경우 ‘1968. 6.경 짱에갯벌로 생합잡이를 갔는데 전에는 생합잡이를 나가지 않던 피고인 최01가 따라왔다. 동네 주민들은 망해초소, 심포초소, 거천초소의 구체적 상황은 모르지만 그 위치는 누구나 알고 있으며, 피고인 최01가 망해초소, 심포초소, 거천초소의 경비상황을 탐지하였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20)
[각주20] 공판기록 149~157쪽
그리고 ② 증인 최46, 서40에 대한 각 증인신문조서의 경우 ‘피고인 최01와 함께 1970. 4.경 중군봉 중턱 잔디밭에 놀러갔고, 1977. 5. 망해사에 놀러갔는데, 중군봉 중턱 잔디밭과 망해사는 동네 주민들이 수시로 놀러가는 곳이고, 중군봉 중턱 잔디밭에서는 고사초소가 보이며, 망해사에서는 망해초소가 보인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고,21) ③ 증인 최38에 대한 증인신문조서의 경우 ‘1970. 4. 초순경 최02과 함께 고사초소에 배치되어 예비군 훈련을 받았는데, 최02이 특별히 초소 상황을 살피는 것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며, 증인 최37에 대한 증인신문조서의 경우 ‘1970. 4. 초순경 예비군 훈련 당시 예비군 소대장으로서 최02을 고사초소에 배치하였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22)
[각주21] 공판기록 160~168쪽
[각주22] 공판기록 170~177쪽
또한, ④ 증인 우39에 대한 증인신문조서의 경우 ‘월북자 가족들의 동태를 내사, 감시는 하고 있었으나 그런 사실을 피고인 최02에게 알려준 사실은 없고, 1970. 4.경과 1971. 10.경에는 피고인 최02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며, 당시 증인이 월북자 가족들의 동태를 내사, 감시하는 것이 피고인 최02에게 감지되었다고는 생각 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주된 내용이다.23)
[각주23] 공판기록 179~183쪽
결국 위와 같은 각 증인신문조서의 기재내용은 독자적으로 이 사건 공소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증거가 되지 못하고, 단지 이 사건 공소사실에 관련된 간접사실 또는 기타 정황에 관한 증거로서 피고인들이 자백하는 경우 이를 보강하는 증거에 불과하다.
3) 이 사건 각 증거 중 각 구속영장, 각 구속통지, 각 구속기간 연장결정, 지출증빙서, 치료환자사인 등 요청회답, 호적등본, 각 수사자료카드, 각 주민등록표, 각 신원보증서, 정보사범 신병 처리 조정, 공안사범 불기소처분승인, 각 변호인선임신고서, 사체 검안서, 병상조회신청, 병상조회, 병상조회회보, 피의자수용증명, 각 구속기간연장결정, 각 구속기간갱신결정은 피고인들의 신병처리, 범죄전력, 기타 절차진행에 관한 서류들에 불과할 뿐 달리 이 사건 공소사실의 증명과는 관련이 없다.
또한, 피고인들과 피고인들의 변호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취지로 작성한 각 항소장, 각 항소이유서, 각 상고장, 탄원서와 피고인들의 가족, 친지들이 작성한 진정서는 이 사건 공소사실을 증명하는 증거가 되지 않고, 검사가 작성한 항소이유서도 이 사건 공소사실과 피고인들의 정상관계에 관한 검사의 의견을 기재한 문서에 불과하여 피고인들이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이상 이 사건 공소사실을 증명하는 증거에 해당하지 않는다.
6. 결론
그렇다면 이 사건 공소사실은 그 내용이 군사기밀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형사소송법 제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들에게 각 무죄를 선고한다.24) 아울러 피고인들은 위법·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하여 헌법에 보장된 방어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 채 북한의 지령을 받아 간첩행위를 한 국가보안법위반의 범법자로 낙인찍혔고, 더욱이 피고인 최01는 마지막까지 자신은 간첩이 아니라고 외치다가 국가의 사형집행에 의하여 사망하였으며, 최06는 수사기관의 고문 등 가혹행위를 이겨내지 못한 채 공소제기 후인 1982. 12. 14. 13:00경 서울 구치소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피고인 최02 또한 가석방 후 무기력한 일상을 극복하지 못한 채 출소 후 4개월만인 1991. 9. 30.경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피고인 등은 모두 가슴에 품은 한을 풀지 못한 채 유명을 달리하였다. 이러한 피고인들과 최06에게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하여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면서, 형사소송법 제 440조, 형법 제58조 제2항에 의하여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하기로 한다.
[각주24] 한편, 최06에 대한 공소사실의 인정여부는 이 법원의 심판범위에 속하지 아니하나, 피고인들과 같은 이유로 최06에 대한 공소사실 또한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판사 김태업(재판장), 김건우, 정지원